직권남용 ‘고발 김태우’, ‘기소 이정섭’ 윤석열 측근

직권남용 혐의 핵심 관건은 ‘특감반원 직권’ 여부

민정수석 문재인, 특감반 규정 만든 주인공

‘문재인 의견서’ 대신 ‘생략된 주어’ 자의적 판단

조국·정경심 2심, 공히 결정적 무죄 증거 무시

[조국 사태의 재구성] 52. 조국 2심, ‘특감반 제도화’ 문재인 무시하고 직권남용 유죄 선고  

지난 2월 8일,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2심 판결이 선고됐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김우수 부장판사)는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게 1심과 같은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이 조 전 장관을 기소한 혐의는 매우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혐의는 ‘유재수 감찰무마’ 직권남용 혐의다. 2심 재판부는 이 혐의 관련으로 사실상 1심과 완전히 동일한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이 판결에서 2심 진행 중에 제출됐던 새로운 결정적 증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중요 의견서가 완전히 무시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 ‘문재인 의견서’의 내용은 조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의 성립 여부에서 핵심적 관건인 ‘특감반원의 직권’ 여부를 판단할 결정적인 증거였다.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4.2.8. 연합뉴스.

이 의견서는 해당 혐의 관련으로 워낙에 결정적인 증거여서, 2심 재판부가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1심과 동일한 판단을 내린 데에는 바로 이 ‘문재인 의견서 전면 무시’가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유재수 감찰무마’ 사건의 전말

이 혐의의 핵심 인물인 유재수는 2017년 말 당시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이었다. 당시 조국 민정수석 휘하의 특별감찰반(이하 ‘특감반’)의 반원이었던 이옥ㅇ은, 유재수에게서 골프장 무상 이용, 골프채 선물 등의 비위들을 포착하고는 조국 민정수석에 보고 후 감찰을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포렌식을 위한 휴대폰 임의제출 등 조사에 협조하던 유재수가, 당초 포착된 비위를 넘어서 조사를 확대하려고 하자 조사를 거부하고 잠적했다. 이 잠적이 2, 3주로 길어지자 당시 검사 출신의 특감반장 이인걸이 조 수석에게 처리 방안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이 보고서에는 ①수사 의뢰, ②감사 이첩, ③금융위 통보 등의 세 가지 ‘조치 의견’들이 담겨 있었다.

민정수석 조국은 이 이인걸 보고서를 두고 처리 방안을 휘하의 두 비서관인 반부패비서관 박형철, 민정비서관 백원우와 함께 논의했는데 당시 박형철은 ‘수사 의뢰’를, 백원우는 ‘금융위 통보’를 권했다. 이 논의의 결과 조 민정수석은 백원우가 권한 보고서의 3안을 채택해 ‘금융위 통보’를 하도록 지시했고, 해당 의견을 낸 백원우가 금융위에 유재수의 비위 사실을 구두 통보하며 인사 조치를 하도록 했다.

당시엔 큰 이슈가 아니었던 이 사건이 불거진 것은, 지난해 강서구청장 재출마로 국민들을 경악하게 했던 ‘특감반원 김태우’의 무차별 폭로 때문이었다. 김태우는 2018년 말부터 2019년 초에 걸쳐 공적 비밀에 속하는 특감반 내부의 사건들을 언론에 떠벌이며 청와대와 민정수석실을 공격했는데, 그랬던 이유가 있었다.

검찰 수사관 출신 특감반원 김태우는 당시 각종 비리들이 줄줄이 적발되어 원 소속인 검찰로 원대복귀 처분된 후 징계 절차가 진행 중이었다. 김태우의 비위 혐의는 참으로 대담하고 기막힌 것들이었는데, 자신의 ‘스폰서’에 대한 경찰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경찰청에 압력 행사를 시도하고, 감찰 대상 기관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도록 해서 자신이 셀프 승진해 보직에 앉으려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었다.

 

대검 감찰본부의 김태우 감찰 결과 요약. JTBC 보도 화면 캡처

즉 김태우는 자신에 대한 징계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로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특감반이 다루었던 사건들을 무차별적으로 떠벌였던 것으로, 그중 상당수는 이후 수사에서 밝혀진 바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전혀 맞지 않았다.

특히 문제의 유재수 감찰 건의 경우, 김태우 본인의 사건도 아닌 다른 특감반원의 사건을 전해들었을 뿐인 ‘카더라 썰’이었다. 정작 담당자였던 이옥ㅇ 특감반원은 검찰 수사 초기 시점까지도 유재수 감찰 건에 대해 별다른 문제 의식도 없었다. 즉 다른 폭로 건들과 비슷하게 김태우가 부풀려 의혹으로 떠벌인 것이다. ☞ 비리 점철된 '특감반 김태우' 징역형…'공익신고자' 아니다

직권남용 혐의 ‘고발 김태우’, ‘기소 이정섭’ 모두 윤석열 측근

김태우는 이 같은 폭로 행위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됐고, 그것이 1, 2, 3심 공히 유죄가 인정되어 최종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가 확정됐다. (그런데 검찰은 정작 김태우 감찰의 실제 이유였던 김태우의 개인 비리들은 전혀 기소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검찰에 의해 기소된 상태에서 기막히게도 윤석열 후보 대선 캠프에 참여했고, 이후 1심 유죄 판결까지 받은 상태에서 2022년 윤석열 당선 직후 강서구청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2023년 5월 18일 대법원의 유죄 확정으로 강서구청장 직을 박탈당한 것이다.

그런데 유죄확정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8월 10일에 윤석열 대통령이 김태우를 사면복권 했다. 김태우는 1심부터 형 확정까지 내내 집행유예 판결만을 받아 단 하루도 형을 살지 않았으므로, 그 사면에는 석방의 효과도 없었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김태우를 사면한 행위의 유일한 결과는 공직에 재출마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 뿐이다.

즉 윤석열 대통령은 집행유예로 피선거권이 없는 김태우에게 사면권을 이용해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사실상 전면 무력화시켜 준 것이고, 범죄자인 그를 이전과 동일한 강서구청장 직에 재출마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기상천외한 사법유린 행위를 한 것이다. ☞ 유죄 확정 3개월만에…사법부 능멸하는 김태우 사면

한편 김태우는 그 이전에도 윤석열 대통령과 같은 중수부에서 상당기간 함께 근무하며 인연을 쌓았다. 윤석열 검사가 중수부에서 근무했던 2010년 8월부터 2012년 7월 사이, 김태우도 같은 과에서 수사관으로 함께 근무했다. 2018년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검사와 김태우 수사관은 서로 근무지가 달라진 뒤에도 김태우가 윤석열을 찾아가 상의할 정도로 인연이 깊었다. ☞ 김태우, 윤석열과 옛 중수부서 함께 근무

한편, 김태우는 자신에 대한 감찰에 대항해 각종 특감반 소관 사건들을 폭로하면서, 2019년 2월 20일에 조국 민정수석과 백원우, 박형철 등을 고발했다. 이 고발의 명목은 두 건으로, ‘드루킹 특검 상황파악 지시’와 ‘유재수 감찰무마’였는데, 김태우와 언론들이 무게를 실었던 것은 언론 보도에서 보듯 전자였다. 그런데 전자는 사실무근으로 무혐의 처분됐고, 검찰은 ‘유재수 감찰무마’ 한 건만을 남기고 있었다. ☞ 김태우, 조국 수석 등 추가 고발…"특검수사 상황 파악 지시"

그런데 이 사건을 접수한 서울 동부지검은 6개월 이상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있다가, 조국 전 민정수석이 법무부장관으로 지명된 후에 이 ‘유재수 감찰무마’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먼지가 쌓여가고 있던 사건을 다시 꺼내 ‘조국 사태’의 일부로 포함시킨 것이다.

특히 이 사건을 수사, 기소, 공소유지까지 혼자 담당했던 검사는 ‘윤석열 사단’의 막내격인 이정섭 검사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례적이게도 2021년 1월 ‘김학의 불법 출금’ 수사를 직접 이정섭 검사에게 찍어 배당하기까지 했다.

이 이정섭 검사는 처가 비리 및 마약사건 은폐 등의 혐의로 국회에서 탄핵된 후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을 받고 있는 바로 그 이정섭이다. 조국 수사와 김학의 불법 출금 수사 등을 주도한 이정섭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첫 검찰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영전했고, 이어서 지난해 차장 검사로 승진하기까지 했다.

 

2024년 1월 31일 ‘고발사주’ 손준성 검사와 ‘처가비리’ 이정섭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다. MBC 뉴스 캡처.
2024년 1월 31일 ‘고발사주’ 손준성 검사와 ‘처가비리’ 이정섭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다. MBC 뉴스 캡처.

요컨대, 조국 전 장관의 ‘유재수 감찰무마’ 혐의는 최초 고발과 검찰 수사 모두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들이 주도한 사건인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공교롭게도 이렇게 윤 대통령이 각별하게 챙겨온 이 두 인물은 심각한 개인비리로 사법 심판을 받았거나 진행 중이다.

직권남용 혐의의 결정적 관건, ‘특감반원에게 직권이 있느냐’

그런데 이 ‘유재수 감찰무마’ 직권남용 혐의의 핵심 중 핵심은, 사실상 사실관계보다는 ‘규정’의 다툼이다. 특별감찰반 감찰의 직권이 개별 특감반원에 있느냐 아니면 민정수석에 있느냐의 문제다.

검찰과 변호인도 이 쟁점으로 가장 치열하게 다퉜고, 1, 2심 판결도 이 혐의 관련으로 이 ‘직권 유무’ 부분에 가장 큰 분량을 할애하여 논증했다.

직권남용죄(‘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는 공무원에게 직권이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범죄다. 검찰의 기소 내용은, ‘특감반원의 감찰 직권 행사’를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감찰을 중단하도록 함으로써 방해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감반원에게 감찰 관련의 직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기소의 직권남용죄도 아예 성립될 수 없다. 법리상 범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조국 전 장관 측의 주장은 감찰 관련 직권은 민정수석의 직권일 뿐 행정요원에 불과한 특감반원에게는 직권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따질 유일한 규정은 ‘대통령비서실 직제’ 제7조 제2항으로, 아래와 같다.

제7조(특별감찰반) ② 특별감찰반의 감찰업무는 법령에 위반되거나 강제처분에 의하지 아니하는 방법으로 비리 첩보를 수집하거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에 한정하며,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해당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거나 이첩한다.

여기서 먼저 눈 여겨 봐야 할 부분은 쉼표 앞의 전반부다. 특감반의 감찰업무에는 강제처분권이 없는 단순 조사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규정은 특감반이 제도화되기 이전의 ‘사직동팀’이 ‘청와대’를 내세우며 멋대로 사실상의 수사를 벌이며 월권 행위를 한 것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규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조항을 어떻게 뜯어봐도 특감반원에게 독립적인 직권이 있다는 명시적 의미를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조항이 특감반원의 업무를 규정한 유일한 문서 규정인데도 말이다.

만약 특감반원에게 감찰에 관한 직권이 있다면, 행정부 산하 공직사회 전반에 대한 감찰을 벌일 수 있는 권한이므로 검사나 경찰에 버금가거나 경우에 따라 그 이상의 매우 강력한 직권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강력한 직권이, 제대로 된 명문 규정도 전혀 없이 존재하는 것이 용납될 수 있겠는가?

문재인 민정수석, 특감반과 직제 규정을 만든 당사자 주인공

지난해 10월 16일에 2심 재판부에 제출된 ‘문재인 의견서’의 내용은, 바로 이 특감반원에게 직권이 있느냐를 설명한 것이다. 여기서 다른 누구도 아닌 ‘문재인’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직전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다. 문재인이 과거 ‘대통령비서실 직제’를 직접 제정한 사람이면서 ‘특별감찰반’의 존재를 처음으로 규정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문재인 전 대통령은 노무현정부 청와대의 첫 민정수석이었다. 2003년 그가 노무현정부 출범과 동시에 민정수석으로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바로 ‘대통령비서실 직제’의 제정이었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특별감찰반을 제도화 했다.

김대중 청와대의 ‘사직동팀’이 각종 비리로 해체된 후 임시 조직으로 운영되던 ‘별관팀’을 공식적으로 재정비해 새로 만든 것이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이었다.

즉 ‘대통령비서실 직제’ 규정도 ‘특별감찰반’의 존재도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의 작품이다. 따라서 해당 규정을 해석하는 의미와 특별감찰반의 업무에 대한 해석에 있어 왈가왈부를 제압하고 명쾌한 설명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문재인이다. 특감반에 관한 한 절대적 권위자인 셈이다.

이 ‘문재인 의견서’에서 문 전 대통령은 “감찰에 대한 처분권한은 민정수석에게 있고, 특감반장과 특감반원은 조사 사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 뿐 처분을 선택할 권한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또 “감찰 시작 여부, 감찰 종료 여부, 종료 후 처분 판단과 결정권한 모두 민정수석에게 있다”라고 설명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한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 노무현사료관.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한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 노무현사료관.

이같은 내용은, 조 전 장관 측이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바와 정확히 일치하고, 실제 특감반의 실무 전례와도 일치한다. 이런 ‘문재인 의견서’에 따르면 검찰이 자의적으로 주장하는 ‘특감반원의 직권’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따라서 직권남용 혐의도 성립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혐의 성립 자체를 송두리째 부인하는 결정적인 내용인 만큼, 검찰은 이 의견서가 제출된 당일 증거 채택에 강력하게 반대하기도 했다. 심지어 의견서 실물을 처음 본 법정에서 “문 전 대통령과 필체가 다르다”느니, “작성 자체도 문 전 대통령이 했다고 믿기 어렵다”느니 하는 어이없는 주장들까지 쏟아냈다.

당시 법정의 검사들은 문서를 보자마자 ‘문재인 필체’의 진위를 바로 판단할 정도로 문 전 대통령의 필적에 전문가였단 말인가.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 어린애 떼쓰기 말장난 같은 주장까지 늘어놓은 것이다. 이런 검찰의 격렬하고도 유치한 반대 의견은, 이 의견서가 그 정도로 결정적인 증거라는 반증이기도 한 셈이다.

당연하게도, 검찰의 이런 어거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문재인 의견서’는 증거로 채택됐다.

송두리째 사라진 ‘문재인 의견서’ 대신 ‘생략된 주어’ 자의적 판단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총 204 페이지로 된 2심 판결문 전체를 통틀어, 이 문재인 의견서는 단 한번도 거론되지 않았다. 심지어 ‘문재인’의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즉 이 재판부는 가장 핵심적이고 절대적인 증거인 ‘문재인 의견서’를 증거로 채택해놓고도 정작 판결에서는 전면 무시한 것이다.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재판부는 도대체 무엇에 근거해 판결을 내린 것일까? 판결문을 살펴보면, 재판부는 그 대신 재판부의 자의적인 유추와 복잡한 다단계 논리 전개를 통해 특감반원에게 직권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가 막히는 부분은 ‘없는 주어 멋대로 끼워넣기’다. 아래는 판결문에서 특감반에 직권이 있다고 판단을 내린 대목들 중 가장 결정적으로 보이는 부분이다.

“위 직제 제7조 제2항 후단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해당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거나 이첩한다’의 주어 혹은 주체도 제2항 전단의 “특별감찰반”을 의미한다”

여기서 “주어 혹은 주체”를 거론한 부분이 중요하다. 앞서 살펴봤던 ‘대통령비서실 직제’ 제7조 제2항 문장의 쉼표 뒷 부분에는 주어가 없는데, 재판부는 그 존재하지 않는 ‘주어’를 ‘특별감찰반’이라고 해석했다는 것이다. 단 한 문장의 짧은 내용이니 다시 한번 보자.

제7조(특별감찰반) ② 특별감찰반의 감찰업무는 법령에 위반되거나 강제처분에 의하지 아니하는 방법으로 비리 첩보를 수집하거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에 한정하며,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해당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거나 이첩한다.

즉, 재판부는 해당 조항에 없는 ‘특별감찰반’ 주어를 끼워넣어 “[특별감찰반은]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해당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거나 이첩한다”이라고 해석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도 매우 해괴하다. 전단에 ‘특별감찰반’이 있으므로 후단의 주어가 ‘특별감찰반’이라고 했다.

그런데 잘 보면, 실제 이 조항 전단(쉼표 앞 부분)의 주어는 ‘특별감찰반’이 아닌 ‘특별감찰반의 감찰업무’다. 따라서 어문 구조상 후단의 주어가 ‘특별감찰반’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더도 덜도 아닌 그냥 억지다. 앞 부분의 주어가 ‘특별감찰반’이었다면 뒷 부분도 주어가 같다고 추정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닌 것이다.

이 대목에서 숨겨진 주어는 조문만 따지고 있어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중립적으로 보더라도 실무적 관행이 어땠는지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당장 이 유재수 감찰 건만 보더라도, 특감반장 이인걸은 처리 방안으로서 3가지 조치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여 민정수석이 결정하도록 했다. 이전의 다른 감찰 사례들도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2심 재판부가 자의적으로 추단한 대로 특감반원에게 수사의뢰 등의 조치를 할 직권이 있었다면, 민정수석의 지휘와 무관하게 특감반원이 독자적으로 수사의뢰 등의 조치를 한  전례들도 적지 않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전례는 단 하나도 없었다.

요컨대 2심 재판부가 어문 구조조차 무시하고 억지로 ‘특별감찰반’이라고 짚었던 주어는, 현실 관행에 비추어보면 ‘특별감찰반’이 아닌 ‘민정수석’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조국 2심과 정경심 2심, 공히 결정적 무죄 증거 무시

그러면 2심 재판부는 도대체 왜 ‘문재인 의견서’를 존재도 하지 않는 듯이 통째로 제외시키고 판결을 내렸을까? 이는 정경심 교수의 2심 재판에서 역시 정 교수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했던 핵심 증거를 통째로 무시했던 사례와 궤를 같이 한다.

필자는 정경심, 조국 재판의 변호인 측 포렌식 분석 담당자로서, 특히 정 교수의 표창장 위조 혐의와 관련해 검찰이 유죄 증거라며 제출한 포렌식 증거들 전부가 허위, 과장된 것이라는 점을 증명하고, 나아가서 정 교수의 부재증명(‘알리바이’) 증거까지 제출했다.

그런데 이들 증거들이 제출된 정경심 2심에서, 재판부는 ‘변호인 측 포렌식 결과를 근거로 한 변호인의 주장은 그 주장의 당부에 대하여 따로 판단하지 않는다’라며 따져보지도 않은 채로 통째로 무시했다. 실제 판결문의 해당 부분 내용은 이보다 조금 더 길지만, 어쨌든 ‘검사 측 증거들이 사실로 인정되니까 변호인 측 증거들은 살펴보지 않겠다’라는 의미였다.

이런 상상초월 황당무계의 판결 논리는, 먼저 결론으로서 유죄를 내리려는 목표를 가지고 그에 맞춰 판결문을 썼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필자가 제출한 증거들이 검사 측 모든 증거들을 탄핵하고 정 교수의 알리바이까지 입증한 증거들이었기 때문에 재판부가 그것을 따지고는 유죄를 내릴 수 없어 이런 억지 논리로 전면 무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런 기괴한 판결을 내린 재판장 엄상필 부장판사는 최근 대법관으로 제청되어 이미 인사청문회를 거쳤고, 이변이 없는 한 대법관으로 취임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 전 장관 2심에서 가장 핵심 증거인 ’문재인 의견서’를 전면 무시한 것 역시, 정경심 2심과 마찬가지로 그 내용을 들여다보고는 도저히 유죄를 내릴 수 없자 해당 증거의 존재 자체를 아예 무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검찰이 그토록 반대하기까지 했던 증거를 도대체 왜 최소한의 언급조차 하기를 회피했겠는가.

이런 식으로 무죄를 입증하는 핵심 증거를 자의적으로 무시해버리는 재판들이, 과연 현실 대한민국에서 용납되어도 되는 것인가? 또 대법원은 이번에도 이런 황당한 핵심 증거 무시 행위를 모른 체 하고 넘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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