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73년 11개월 8일 동안 서민들의 도심공원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 창경원 동물원의 동물들이 경기도 과천의 서울대공원으로 이사를 했다. 사육사가 던진 나일론 포획망에 붙잡혀 나무상자 속에 들어간 공작은 청록색 꼬리를 흔들며 정든 우리를 떠나기 싫은 듯 ‘꺽꺽’ 울어댔다. 곧이어 검은댕기해오라기도 사육사에게 붙잡혀 나무상자 속에 넣어졌는데, 검은 댕기를 흔들며 영문도 모르고 재롱을 피웠다. 동물들의 이동순서는 성질이 온순해 다루기 쉬운 동물부터 시작됐다. 내년에 옮겨질 대형 동물들은 동물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를 딱 하나만 꼽자면 아무래도 저출산 문제일 테다.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머잖아 ‘인구소멸’, 나아가 ‘국가소멸’을 주장할 정도로 급격한 인구절벽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합계출산율 0.6~0.7은 어떠한 종이든 멸종위기로 분류된다고 한다.젊은이들이 결혼을 안 한다. 애를 낳지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양질의 일자리도 적고 주거환경도 녹록치 않으며 기본적인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든 조건 등 간단히 말해 애를 낳는 나도, 태어나는 아이도 결코 행복하지 못할 거라는 체념이 사회 분위기로 무겁게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조현철 감독의 영화 ‘너와 나’는 6개월 전에 개봉했다. 개봉 당시 평단에서는 주목을 받았음에도, 대중적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독립영화로서 당연한 현상이었다. 사람들은 준비가 덜 된 것처럼 보였다. 어떤 영화는 서서히 물이 드는 방식으로 소문이 퍼져 나간다. 조금씩 조금씩 물이 들고 색깔이 완성된다. 그런 식이다. 이제야 사람들은 서서히, 아주 천천히, 세월호의 집단적 죄의식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럼으로써 그것을 객관화하기 시작하는 듯이 보인다.세월호를 탄 아이, 타지 않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여는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4월5일~9월22일)는 1세대 조경가 정영선(1941~ )의 50여 년에 걸친 작업을 아카이브 중심으로 펼쳐서 보여준다.미술관에서 제공한 전시 소개 팜플렛을 위주로 정영선의 작업을 연대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불국사 성역화(1974), 충청북도 자연학습원(1981), 아시아선수촌아파트, 아시아공원(1986), 국립수목원(1987), 한국종합무역센터(1987), 올림픽선수촌아파트(1988), 도투락월드(1990), 완도식물원(1991), 독립기념관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공식 이민사의 출발은 19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2월 22일 121명이 인천 월미도 앞바다에 정박 중인 일본 여객선 겐카이마루(玄海丸)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건너갔다. 이 가운데 신체검사를 통과한 102명이 미국 상선 게일릭호로 옮겨 탄 뒤 이듬해 1월 13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 입항했다.첫 미국 이민자의 대부분은 인천 출신이었고, 인천 내리교회 신도가 많았다. 이곳에 파견된 미국인 선교사 조지 존스가 모집을 독려했기 때문이다. 게일릭호를 시작으로 1905년 8월
“호른 연주자가 되려면 악기 연주를 연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스트레칭, 명상, 요가, 알렉산더 테크닉을 연습하고 수영과 조깅 등의 운동을 해야 하며, 무엇보다 잘 먹고 잘 자야 한다.”노르웨이 음악원의 호른 연주자 율리우스 프라네비 키우스의 이 글이 마음에 와닿는 것은 호른 연주, 노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의 일을 잘 해나가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들을 간결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내가 요가에 관심을 갖고 시작한 것은 이십대였다. 세미나에서 들었던 요가 선생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압도되어 바로 그
근래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문화·예술 지원 방향을 대폭 개편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호언들은 중앙정부의 문화·예술 공공기관 심의에 무작정 책임심의제를 재도입하겠다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그간 유인촌 장관은 “모든 지원 사업의 심사는 자천이나 타천으로 뽑힌 현장 전문가들이란 사람들이 와서 심사하는데, 결국 손이 안으로 굽는 심사가 된다” “심사 담당 직원들은 전문가가 했으니 우린 모른다는 식이어서 한번 심사 끝나면 책임질 사람이 없다” “책임 심의 시스템을 통해 지원 이후에도 사후 컨설팅까지 돕는 등 직원
오랜만에 만나는 대형 홍콩(중국)영화 ‘골드 핑거’의 한자어 제목은 금수지(金手指)이다. 말 그대로 황금 손가락이란 뜻이고, 다른 말로 하면 마이다스의 손쯤 되겠다. 무엇이든 손만 대면 몽땅 금이 되는 남자의 얘기다. 중국의 톱스타 양조위(량차오웨이)와 유덕화(리우더화)가 주연이지만 영화를 잘 들여다 보면 사실상 양조위가 원톱이다. 둘은 세기적 영화였던 ‘무간도’ 이후 20년 만에 다시 영화에서 만났다. 그 사이에 홍콩은 중국화가 거의 이루어졌고 이제 다시 20년쯤 후에는(2046년) 자치권마저 없어지고 완전히 중국이 된다. ‘홍콩
광고하면 CM(Commercial Message)송이 떠오른다. “열두시에 만나요”하면 특정 아이스크림이 떠오르고 “손이 가요 손이 가”, 이 소절만 듣고도 어떤 과자가 생각난다. 거의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한다.선거철이면 길가에서 로고송에 맞춰 율동하는 선거운동원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때로는 큰 소리의 노래가 시끄럽기도 하지만 로고송도 들리고 조금 시끌벅적해야 선거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선거운동하면 누구나 이런 모습을 먼저 떠올린다. 1952년 아이젠하워 선거 로고송 ‘I Like Ike’세계 최초의 선거로고송
서울 남산 정상에 오르는 방법은 두 손으로 꼽아도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그 가운데 성곽 따라 걷는 한양도성(漢陽都城) 순성(巡城)길은 최근 20여 년 사이 거세게 불어닥친 문화유산 답사 열풍과 둘레길 걷기 붐을 타고 높은 인기를 누린다.남산 동쪽의 순환버스 도로를 따라 오르다가 북측 둘레길과 만나는 지점을 지나면 성곽이 나타난다. 중구와 용산구의 경계이기도 한 성벽 바깥을 따라 나무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전망대까지 650개나 된다. 전망대를 내려서면 성벽 안쪽이다. 성곽은 마루금을 따라 위로 이어지지만 길은 엉뚱한 쪽으로 나 있
총선이 막바지를 향해 가며 치열해지고 있다. 총선 결과에 따라 권력 지형이 요동칠 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증오와 술수가 난무하는 권력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늘 봐 오던 장면들이 되풀이될 뿐이어서 그다지 놀랍지도 않을 것이다. 권력의 이런 악순환을 두고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진정 놀라운 것은, 이제는 ‘이런 게 정치’라는 식으로 모두가 체념한 듯 필요악 정도로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정치 자체를 폄훼하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잊었던 정치의 이상향을 다시 상기해 보자는 것이다.오래전부터 민주주의의
요즘은 ‘만화’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는 ‘웹툰’(WEBTOON)이라는 신조어가 차지했다. ‘웹툰’이라는 단어뿐 아니라 모바일이나 PC 단말기 등 디지털 디바이스를 통해 스크롤을 아래로 내리며 읽는 장편극화 연출방식 또한 우리나라가 종주국이다 보니 생겨난 현상이겠다. 웹툰은 만화의 여러 형식 중 하나일 뿐이지만 어쨌든 ‘만화’라는 단어를 완벽하게 대체했다.몇 년 전부터 K-웹툰이 K-컬처를 선도하는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각광 받고 있다. 웹툰 자체가 해외시장을 개척해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글로벌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중국과 서구세계가 그다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호적이고 협력적이다. 특히 영국이 그렇다. 심지어 미국도 중국과 상호 이해를 같이 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는 현실과 매우 달라 보이고, 현실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현실의 국제정치가 잘못 가고 있다고 우회적으로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넷플릭스의 ‘어매이징’한 8부작 드라마 ‘삼체’는 중국의 고전적 사상(당대의 유물론이 아니라)과 서구의 합리적 이성이 오히려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 준다
2012년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SBS의 에 출연했던 때가 생각난다. 당시 이 프로그램에서 박근혜는 김제동이 정치인에 대한 코미디언의 풍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코미디인 데 뭘, 풍자니까 정치권에서 좀 반성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됩니다”라고 답했다. 김제동의 이 질문은 이명박 정부 말기에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으로 집단모욕 유죄 판결을 받은 강용석 국회의원이 자신에 대한 판결의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해, 개그콘서트에서 정치인을 풍자한 최효종을 집단모욕죄로 고소한 사건이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을 배경으
이상남(1953~ )은 여느 화가와 많이 다르다. 붓 대신 오구(烏口)와 컴퍼스를 쓰고, 그려 넣기보다 갈아내 없애는데 무게를 둔다. 자신이 만든 아이콘을 조합하고 때로 그것끼리 충돌시킴으로써 무언가를 표현한다. 어떤 작가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만날 때면 빵모자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에 배낭을 메고 오는데,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들면 여축 없는 뉴요커다. 실제로 그는 뉴욕에 작업실을 두고 대부분 그곳에서 작업을 하고, 국내 전시나 작업이 있을 때 한국에 온다. 그가 개인전 ‘마음의 형태’(페로탱 갤러리, 2024. 1. 2
팬데믹 이후로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예측 불가능한 삶. 그 카오스를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고대 그리스 회의론자들은 에포케(epoche) 즉, 판단중지를 강조했다. 모든 것은 좋다, 나쁘다를 한 번에 판단해서는 안되며 있다, 없다를 보이는 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이것이 요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다. “전체를 훤히 내려다보지 못하는 이상, 이 길들이 셀 수 없이 많은지 아니면 단 하나에 불과한지 확인한 길이 없다.” 이렇게 말한 카프카 역시 판단유보에 자신을 맡긴
지난 1일 오후 6시, 일본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 간바이칸(寒梅館) 하디홀에서는 일본 내 조선학교의 무상교육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차별’ 상영회가 열렸다. 이날은 조선의 독립과 함께 인권·평등을 선언한 3·1운동 105주년 기념일인 데다 이곳이 일제강점기에 민족시인 윤동주와 정지용이 다닌 학교여서 더욱 뜻깊었다.영화를 공동연출한 김지운·김도희 감독은 교정에 나란히 세워진 두 시인의 시비 앞에 헌화한 뒤 상영회에 참석했다. 객석을 메운 140여 명의 관객도 상영회가 열린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잘 알아서인지 저마다 등장인물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정치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묻는 담론이 많이 등장한다. 아니, 등장했는데, 기이하게도 최근에는 정치 그 자체의 의미를 묻기보다 그저 이기고 지는 일, 나아가 상대편을 적으로 돌리고 혐오를 퍼뜨리는 말들이 더 많아졌다. 정치를 바라보는 시야가 전 지구적으로 협소하고 저속해지고 있다는 실감이 자꾸 들어 괴로울 지경이다. 특히 민주당을 향해서는 전에 없이 답답함을 토로하는 글들이 는다.이럴 때 장은주의 책 이 등장한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학전이 3월 15일 문을 닫는다. 재정난과 김민기 대표의 건강 문제가 겹치면서 폐관을 결정했다. 대학로에 문을 연 지 33년 만의 일이다. 배울 학(學)에 밭 전(田), 학전은 말 그대로 ‘배우는 밭’이었다. 그래서 김민기는 학전을 ‘못자리’라 불렀다. 이곳에서 싹을 틔우고 추수는 큰 바닥으로 가서 거두라는 그의 생각대로 학전은 한국을 대표하는 많은 배우를 배출했다. 학전을 거친 작품들도 빼놓을 수 없다. 김광석의 콘서트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학전의 자랑이자 한국 공연문화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그런 학전이 뒤안길로 사라진
한국 시각 11일 오전 8시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릴 제96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가장 도발적이면서도 가장 혁신적인 작품은 칠레 흑백영화 ‘공작’이다. 스페인어 제목으로는 ‘엘 꼰데(El Conde)’, 영어로는 ‘Duke’, 한자로는 ‘公爵’이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에서 고작 촬영상 후보에 오른 정도지만 시대와 세상에 대한 고찰이 가장 명석한 작품이다. 칠레의 독재자이자 세계적으로 잔인한 살인마 랭킹 톱5 급인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사실은 알고 보니 흡혈귀, 곧 뱀파이어였다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피노체트는 지난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