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기능 못해 놓고 행정부·사법부 권한 침해?

특조위가 영장주의 훼손?…"세월호 때 있던 권한"

재난안전 예산 1조8900억인데 96억이 과다?

위패·영정 없는 분향소 차리고 최선 다했다?

유가족 "정부와 논의 할 생각도 마음도 없다"

"대통령 거부권 남용 국민 심판 못 피할 것"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이태원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 행사한 가운데, 정부가 이태원 특별법이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사회는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159명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윤석열 정부야말로 '위헌 정부'"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1시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정부의 국무회의 심의 결과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소한의 명분도 근거도 없는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은 국민적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정부의 발표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1시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정부의 국무회의 심의 결과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2024.1.30. 에큐메니안 임석규 객원기자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1시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정부의 국무회의 심의 결과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2024.1.30. 에큐메니안 임석규 객원기자

앞서 정부는 이날 오전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면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업무 범위와 권한이 과도해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고, 특조위 구성 절차에 공정성·중립성이 담보되지 않았다고 했다. 또 소요 예산과 행정력이 막대하지만, 국민 분열만 조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국무회의 뒤 브리핑을 열고 "이태원 특별법은 특조위가 법원의 영장 없이 동행명령과 같은 강력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단순히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한 것만으로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의뢰할 수 있다는 대목도 있다. 이는 헌법이 정한 영장주의 원칙을 훼손할 뿐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을 해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 명분을 만들기 위해 과도하게 해석하거나 왜곡한 정황이 곳곳에서 보인다.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주장도 확인됐다.

① 특조위가 영장주의 훼손?…"세월호 있던 권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이태원 참사 대응TF 단장인 윤복남 변호사는 영장주의 위반이라는 정부 주장에 대해 "기존 특조위 세월호 특조위나 사회적참사 특조위 등 유사한 조사위에 모두 있었던 권한이고 관례"라며 "과거 조사위에서 위헌이 제청돼 위헌 심판을 받은 적도 없다. 새삼스럽게 이태원특별법에 대해 위헌이고 영장주의 위반이라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라고 했다.

아울러 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특조위가 조사 대상자 및 참고인에 대해 영장 없이도 동행명령을 하고, 불응 시 과태료를 부과하며, 자료제출 요구 거부를 사유로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신체의 자유와 같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1시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정부의 국무회의 심의 결과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오른쪽부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윤복남 변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  참여연대 이지현 사무처장. 2024.1.30. 에큐메니안 임석규 객원기자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1시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정부의 국무회의 심의 결과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오른쪽부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윤복남 변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 참여연대 이지현 사무처장. 2024.1.30. 에큐메니안 임석규 객원기자

이에 대해서도 윤 변호사는 "동행명령권은 조사 대상자나 참고인이 출석하지 않을 때 불가피한 권한이고, 불응하면 과태료 부과 정도라서 영장주의 위반으로 볼 수 없다"며 "자료 제출을 거부할 경우 압수수색 영장을 검사에게 의뢰한다는 것도 범죄 혐의가 소명된 경우에 한해 청구되는 것이고, 검사가 영장을 의뢰했는데 범죄혐의가 없고 압수수색 영장 대상이 아니라면 의뢰를 거절할 수 있다"고 했다.

나아가 윤 변호사는 "검사가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더라도, 우리 헌법은 법원 판결 없이 압색영장을 발부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면서 "2중, 3중 제한을 받고 있어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 '(압수수색 영장을) 의뢰한다'는 이유만으로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건 과장된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② 유가족 몫도 없는데 특조위가 공정성 결여?

방 실장은 특조위 구성에 대해서도 "공정성과 중립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며 "사실상 국회 다수당이 특조위 구성을 좌지우지할 수 있어 이대로 시행된다면 특조위를 꾸리는 단계부터 재난의 정쟁화가 극심하게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특조위는 여당 4명, 야당 4명, 국회의장이 관련 단체 등과 협의한 3명 등 11명으로 구성된다. 

윤 변호사는 "정부는 다수 일방에 의한 특조위가 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다수 일방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다"며 "이번에 통과된 특별법에는 다수 일방에 의한 조사위원회 구성이 가능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조위원 여당 4명, 야당 4명, 국회의장이 관련 단체와 협의해서 3명을 추천하는데, 국회의장은 국회를 대표하는 입법부 수장이다. 야당 출신 의장이라고 야당 편이냐"며 "오히려 (단체를 특정하지 않고) 관련단체와 협의하도록 돼 있어서 여당이든 관련단체든 의견을 내서 추천권을 행사 하도록 하면 된다. 국회의장 추천을 두고 다수 일방이라고 한 것이라면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를 무시, 모독하는 처사"라고 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상정되자 본회의장을 나와 피케팅을 하고 있다. 2024.1.9. 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상정되자 본회의장을 나와 피케팅을 하고 있다. 2024.1.9. 연합뉴스

게다가 이태원 특별법에는 유가족의 직접 추천권도 없다. 세월호 특조위는 17명 중 희생자 유가족에게 위원 3명(상임 1명)의 추천권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8명 중 희생자 유가족에게 위원 3명(상임 1명)의 추천권을 인정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특별법 통과를 위해 원안에 있던 유가족 직접 추천권도 포기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특조위 구성을 두고 공정성·중립성을 말하는 것은 과도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③ 특조위가 행정부·사법부 권한 침해?

정부는 특조위의 업무 범위와 권한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광범위해 사법부와 행정부의 영역을 침해하고 있다"면서 "참사의 책임소재 규명은 엄연히 사법부의 역할이고, 재난 전 과정의 적정성 조사는 행정부의 역할인데 특조위가 그 모두를 포괄적으로 담당하겠다는 것은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특조위는 행정부가 재난원인조사도 실시하지 않는 등 10·29 이태원참사 전 과정의 적정성에 대한 조사를 해야 되는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설치되는 기구다. 또한 정부가 참사를 예방하거나 그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음에도 하지 못했던 정책적, 구조적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조사기구가 필요하다.

윤 변호사는 행정부 영역을 침해한다는 주장에 대해 "예방 활동이나 현장 대응 등이 적정했는지 살피자는 게 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냐"며 "(특조위는) 해외에서도 인정된 사례이고, 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한 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사법부 권한을 침해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특조위가 무슨 형사 판결을 하고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대신하겠다는 것이냐"며 "(특조위는) 조사를 해서 필요하다면 고발을 하고, 고발을 한 결과 범죄 혐의가 있다면 다시 사법부로 넘어가는 절차의 첫 단추일 뿐이다. 어떻게 사법부의 권한을 침해한다는 것이냐"고 했다.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법원의 보석 청구 인용에 따라 7일 오후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2023.6.7.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법원의 보석 청구 인용에 따라 7일 오후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2023.6.7. 연합뉴스

④ 검·경수사, 국정조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정부는 특별법의 주 목적인 참사의 진상규명은 검·경 수사, 국정조사 등을 거쳐 정상적으로 진행됐고 인파사고를 대비한 재발방지 대책도 수립·시행 중이라며, 참사 직후부터 현재까지 검·경 수사, 국정조사, 헌법재판소 판결 등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윗선에 대해서 전혀 수사를 하지 않은 채 '꼬리자르기'로 마무리했고, 참사 발생 1년 3개월이 지났지만 법적 처벌을 받거나 사퇴한 공직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참사 책임으로 구속기소된 6명도 전원 석방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검찰의 기소 지연으로 지난 19일에야 재판에 넘겨졌다. 국회 국정조사는 책임자들이 출석을 회피하고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며 반쪽짜리에 그쳤다. 

윤 변호사는 "특수본은 '군중 유체화'(군중에 휩싸여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떠밀려 이동하는 현상)를 원인이라고 발표했지만, 우리가 알고 싶은 진상은 그게 아니"라며 "군중 유체화는 현상이다. 그 현상이 왜 발생했는지, 참사 전에 경비대를 왜 배치하지 않았는지, 112 신고는 오후 6시 34분부터 계속 됐는데 왜 늑장대응됐는지, 구조 활동은 왜 그렇게 더뎌서 희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아직 답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더구나 유가족들은 가족을 어떻게 떠나보냈는지, 몇 시 몇 분에 어떤 경위로 갔는지조차도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며 "유엔 자유권위원회도 지난 11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전면적이고 독립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국가에게 진실을 규명할 독립적이고 공정한 기구를 설립할 것을 권고했다. 이러한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통해서만 제대로 된 재발 방지책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회에서 야당이 단독 처리했던 이태원 참사 특별법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2024.1.30.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회에서 야당이 단독 처리했던 이태원 참사 특별법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2024.1.30. 연합뉴스

⑤ 96억 원 예산 때문에 재난관리 시스템 차질?

방 실장은 "국회예산처는 앞으로 2년간 특조위 인건비로만 96억 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면서 "일선 재난관리시스템 운영에도 차질을 빚을 공산이 크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사실관계가 틀렸을 뿐 아니라 과도한 주장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해 '2024년도 행안부 예산안'에서 재난안전 관련 예산만 1조 8900억원대를 편성했었다. 656조 6000억 원대 예산을 집행하는 국가 단위에서 96억 원 때문에 재난관리시스템 자체가 차질을 빚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매우 떨어진다.

아울러 정부가 주장하는 국회예산처 자료는 지난해 6월 13일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최초 발의한 이태원 특별법 원안을 기초로 작성된 추계 자료다. 방 실장은 인건비만 96억 원이 든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관계도 틀린 주장이다.

국회예산처 자료에 따르면 특조위 사무처 직원 인건비는 72억 5700만 원이다. 여기에 특조위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 수당(19억 5500만 원), 자문위원 수당(8000만 원)을 모두 합쳐도 92억 9200만 원에 불과하다. 방 실장은 여기에 종합보고서 작성 발간 예산까지 모두 합쳐 '인건비 96억 원'으로 뭉뚱그려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국회예산처 계산에는 "제 위원회의 운영 기간 및 개최 횟수에 따라 추가재정소요가 달라질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최종안은 여당의 반대로 특조위 활동 기간을 최장 1년 9개월에서 3개월 단축한 만큼 원안으로 추계한 92억 원 인건비는 실제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국무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이 의결된 30일 오전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관련 정부 입장과 피해지원 종합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2024.1.30. 연합뉴스
국무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이 의결된 30일 오전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관련 정부 입장과 피해지원 종합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2024.1.30. 연합뉴스

⑥ 위패·영정 없는 분향소 차리고 최선 다했다?

이 밖에도 방 실장은 "정부는 이태원 일대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국가애도기간을 지정했으며, 전국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해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했다"면서 "장례 기간 동안 대통령님을 필두로 여러 국무위원이 수차례 합동분향소와 사고 현장을 찾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고 했다.

또 "행정안전부가 10.29 참사 피해자 지원단을 설치하여 유가족 지원 실무를 전담토록 했다. 지원단은 치료비와 간병비 지원부터 2차 가해 방지와 의료비 연장 지원과 같은 유가족 요청사항 840여 건을 처리했다"며 "생활이 곤란해지신 분들을 위해 생계비를 지원하고 전국 14개 고용센터에 전담 창구를 열어 일자리를 찾는 분들을 도왔다"고 했다.

이에 대해 민변 이태원 대응TF 소속 조인영 변호사는 "위패와 영정 없는 합동 분향소가 차려 정부는 합동 분향소 설치에 대해 유가족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유가족은 기사를 통해서 이 사실을 접했고, 심지어 합동 분향소가 설치되었는지 몰랐던 유가족들도 많았다"며 "어떻게 이런 결정을 피고 유가족과 희생자들을 위로했다고 했는지, 추모했다고 했는지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유가족마다 전담 공무원을 배치하여 장례를 지원했다고 했지만, 유가족 면담 결과를 보면 장례식장에서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고 가족들에게 장례를 빨리 치르도록 독촉했다"며, 의료비 지원도 "유가족들에게 문자 한 통으로 안내했을 뿐 자세한 내용조차 안내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세한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없었고, 생존자들은 문자도 받을 수 없어 의료비 지원이 있었는지 지금까지 모르는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방문, 헌화하고 있다. 2022.11.4.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방문, 헌화하고 있다. 2022.11.4. 연합뉴스

조 변호사는 "생계비 지원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제도를 활용해서 기초생활 수급자에 대한 생계 지원만 가능하다고 했을 뿐 어떠한 지원을 약속했느냐. 세월호 참사 때만큼이라도 생계비 지원해달라고 그토록 요구했지만 정부가 법이 없으니 어렵다고 말하지 않았냐"며, 일자리 지원도 "실업 등과 관련된 상담을 하고 기존의 실업 제도 이용하라고 하는 안내밖에 없었다"고 했다.

유가족 "정부와 논의 할 생각도 마음도 없다" 

이날 정부는 유가족과 협의해 '10·29 참사 피해지원 종합 대책'을 수립·추진하겠다면서 피해자의 생활 안정을 위한 지원금과 의료비, 간병비 등을 확대하고, 현재 진행 중인 민·형사 재판 결과가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배상·지원한다고 했다.

또 국무총리 소속으로 '10·29 참사 피해지원 위원회'를 구성해 다양한 심리안정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참사로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본 근로자에 대한 치유 휴직도 지원한고 했다. 영구적인 추모시설을 유가족,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건립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그러나 이는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 악화를 막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내세운 선심성 정책으로 해석된다. 오히려 참사가 일어난지 1년 3개월이 지나서야 종합대책을 발표하는 것은 그동안 정부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사실만 방증할 뿐이다.

유가족들도 정부 측 제안에 대해 '생각해 볼 가치도 없다'며 거부 의사를 명확하게 밝혔다.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이태원참사 특별법 거부권 건의에 항의하고 있다. 2024.1.30. 연합뉴스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이태원참사 특별법 거부권 건의에 항의하고 있다. 2024.1.30. 연합뉴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정부의 피해지원 위원회 참여 여부에 대해 "정부가 국무총리 주재로 피해자들을 위해서 기구를 만들어서 피해자, 유가족들과 논의해보겠다는데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지금까지 저희가 1년 3개월간 무수히 호소하고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달라 억울한 심정 토로할 때 뭐하고 있었나. 단 한 번도 눈길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그렇게 철저히 외면하고 무시하던 사람들이 이제와서 피해자를 위하는 척 기구를 만들어서 뭘하겠다는 것이냐"며 "단 한 줌의 진정성도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거부권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것들을 끌고나와서 국민들을 호도하는 거라 생각한다. 저희들은 특별법과 특조위가 아닌 그 어떤 것도 정부 측과 논의할 생각도 마음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대표단과 당 이태원참사특위 위원들은 서울광장 앞 분향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홍 원내대표는 유가족을 만난 뒤 취재진에게 "윤 대통령은 현장에 와서 유가족 손 한번 잡아주지 않고 기어코 거부권을 행사했다"며 "참으로 비정하다. 유감을 넘어 분노한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국민을 갈라치기하고 왜곡된 프레임으로 유가족에게 모욕을 주고 있다"며 "배상 문제는 차후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진상규명과 책임자가 누군지 알고 싶다는 것"이라고 했다.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권력을 함부로 행사한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국민과 역사에 죄를 지은 오늘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할 것"이라고 적었고, 4선 홍영표 의원은 "특별법은 거부해놓고 '최대 배상 지원'을 운운하는 천박함까지, 진정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 정권"이라고 했다.

 

국무회의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이 의결된 30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 서울광장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과 면담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2024.1.30 [공동취재] 연합뉴스
국무회의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이 의결된 30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 서울광장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과 면담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2024.1.30 [공동취재] 연합뉴스

임오경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대해 "국민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 원내대변인은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아내의 범죄 의혹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으로 부족해서 사회적 참사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민의를 거부하는 수단으로 삼다니 참 지독한 대통령"이라며 "재난을 막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대통령의 이 같은 기본책무를 부정했다"고 했다.

그는 "유가족이 바란 것은 보상이 아니라 오직 진상규명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유가족의 진상규명 요구를 거부한 것도 모자라 배보상 운운하며 유가족을 모욕하지 말라"며 "이태원 특별법이 명분과 실익이 없고 국민 분열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한덕수 총리의 주장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사회적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에 무슨 명분이 있고 실익이 있으며, 어떻게 국민을 분열시킨다는 말인가? 국민을 모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의 책임을 거부하고 진상규명을 막으며 재난을 정쟁화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정부와 여당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무책임한 정부의 적반하장에 분노한다"면서 "정부의 책임을 가리려는 윤석열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을 국민은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가족들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 국민의 의원들은 자신들의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결정으로 역사에 남을 죄를 지었다"며 "최소한의 명분도 근거도 없는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은 국민적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고, 진실은 반드시 드러날 것이고 참사의 진상규명과 정의를 바라는 국민의 뜻은 기필코 이루어 질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의 공식입장문 전문.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 행사한 윤석열 정부 규탄한다>

오늘(1/30) 윤석열 정부가 '10·29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참사 발생 459일째이자, 국회에 특별법이 발의된지 286일만이다. 1년 넘게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요구와 면담 요청을 외면하더니 결국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공포를 거부했다.

이미 집권여당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었기에,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뜻을 거스르면서 비겁한 결정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뼛속까지 파고드는 밤바람을 맞으며 철야 15,900배를 올리고, 오체투지 행진을 하며 특별법 공포를 촉구했었다.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되기전부터 윤석열 정부와 집권여당 국민의힘은 거부권 행사를 공언해왔지만, 오늘 거부권을 행사하며 내놓은 정부의 공식 설명은 옹색하기 그지없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더 이상의 진상조사가 필요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하며 여러 조항들을 삭제하거나 변경할 것을 요구해 왔고 우리 유가족들은 상당 부분 여당의 주장을 수용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특별조사위원회의 위원장 추천권을 대통령 또는 자신들이 가져가겠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협상을 중단하고 특별법 표결을 거부하고 본회의장에서 퇴장했다. 그러면서 특별조사위원회의 구성이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은 결국 대통령 마음대로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임명하고 싶다는 것 아닌가. 정부를 조사해야하는 특조위 위원장을 정부의 수반이 임명해야 공정하다는 것인가. 윤석열 정부가 조사의 대상이 되고 진실이 규명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 있는가?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위해서는 정부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조사기구를 구성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닌가? 유엔 자유권위원회까지 나서 ‘독립적인 진상조사 기구 설립’을 권고한 이유를 정녕 이해하지 못하는가?

이미 똑같은 법조항을 가지고 있는 여러 법률들이 존재함에도 마치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만 동행명령장 발부와 압수수색 의뢰 조항에 있는 것처럼 호도하면서 ‘영장주의 등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야 말로 헌법과 국민의 기본권을 욕보이는 것이 아닌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159명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윤석열 정부야 말로 ‘위헌 정부’이지 않은가.

참사 발생 초기부터 여당 유력 인사들이 유가족들을 보상에나 관심있는 사람들로 매도하더니, 정부도 마찬가지의 행태를 보였다. 유가족들이 언제 재정적 지원과  배상을 요구했던가? 유가족들이 오직 바라는 것은 진상규명이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묵살했다. 어떻게 진상규명의 책임은 외면하면서 돈으로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이렇게 모욕할 수 있는가? 참담함을 넘어 이루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꼬리자르기로 끝난 경찰 특수본 수사, 거짓증언과 자료미제출 등으로 퇴색된 국회 국정조사에서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 소재는 따져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무엇이 충분하다는 것인가. 특별조사위원회가 사법부와 행정부의 권한을 침범한다고 주장하며 더이상 조사가 필요없다 반복하면서 어떻게 피해자들을 지원하겠다는 것인가. 우리 유가족들은 정부의 그런 행태를 절대 납득할 수 없는 발상이다.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대통령의 거부권은 무제한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다. 국민의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법안이거나 국민적 반대 여론이 거센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절제되어 행사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참사 특별법을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며 거부하는 것은 결단코 정당화될 수 없다.

10.29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를 안전사회로 만들기 위한 법이다. 이 법을 거부한 것은 국민의 뜻을 거부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 국민의힘 의원들은 자신들의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결정으로 역사에 남을 죄를 지었다.

우리는 안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기회를 또다시 놓쳤고, 재난참사의 위협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최소한의 명분도 근거도 없는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은 국민적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진실은 반드시 드러날 것이고 참사의 진상규명과 정의를 바라는 국민의 뜻은 기필코 이루어 질것이다. 10.29 이태원 참사의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4. 1. 30.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