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3, 4세 승계 기업 상당수 실적 저조

글로벌 1등기업보다 순이익률 2.5배 낮아

시가총액도 일본과 대만 1등기업이 월등

그래도 윤 정부는 재계 입장 앵무새처럼 반복

윤석열 정부는 상속세를 내리지 못해 안달이 난 듯하다. 윤 대통령을 비롯해 경제 부처 장관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속세 완화’ 메시지를 내놓는다. 급기야 한국 증시가 저평가된 것까지 상속·증여세 탓으로 돌린다. 상속·증여세를 내고 나면 창업자 아들과 딸, 손자, 증손자 등 친족이 기업을 물려받을 수 없게 돼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논리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 관련 업계 간담회에 참석해 정부가 마련한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4.3.19. 연합뉴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 관련 업계 간담회에 참석해 정부가 마련한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4.3.19. 연합뉴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9일에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자본시장 전문가 간담회에서 여기에 동조하는 발언을 했다. 재계 입장을 대변하는 참석자가 기업 밸류업(가치제고) 지원 방안으로 상속세 부담 완화를 언급하자 이렇게 답했다. “정부는 합리적인 방안 마련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 상속세 부담 완화는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상속세를 내리겠다고 확답하지 않았으나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상속·증여세 완화로 총수 일가가 경영권을 승계할 때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나 얼마나 빈약한지는 어렵지 않게 증명할 수 있다. 재벌 3, 4세가 경영을 맡은 뒤 이들 기업의 영업실적이 저조한 것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창업 세대에 비해 절박함이 약한 데다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기업을 맡은 결과라 할 수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이 최근 발표한 자료가 이를 증명한다. 법인세 인하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내놓은 것인데 상속세 완화 주장을 반박하는 자료로도 해석할 수 있다. 요지는 글로벌 1위 기업의 평균 순이익률이 국내 1위 기업의 2.5배에 달한다는 것이다. 글로벌산업분류기준(GICS)에 따른 137개 세부 산업별 시가총액 1위에 해당하는 국내 기업과 세계 1등 기업의 매출액 대비 이익을 비교 분석한 결과다.

평균 총이익률은 글로벌 1위 기업이 44.7%로 국내 1위 기업 40.6%의 1.1배 수준이나 평균 영업이익률은 글로벌 1위 19.2%, 국내 1위 9.5%로 2배 차이가 난다.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은 실적 격차가 갈수록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1위의 2022년 평균 순이익률은 15.4%로 2012년보다 4.9%포인트 올랐다. 증가율로는 31.8%에 달한다. 이에 반해 국내 1위 기업의 평균 순이익률은 2012년 5.8%에서 2022년 6.3%로 10년간 0.5%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순이익률 격차는 2012년 1.8배 수준에서 2022년 2.5배 수준으로 확대됐다. 이는 삼성 등 많은 한국 1등 기업 경영권이 3, 4세로 넘어간 시기와 겹친다.

 

 자료 : 한국경제인협회. 글로벌 1위 기업과 한국 1위 기업 수익성 비교.
 자료 : 한국경제인협회. 글로벌 1위 기업과 한국 1위 기업 수익성 비교.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자료를 바탕으로 국내 증시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과 우리와 경쟁하는 일본과 대만의 시총 1위 기업의 영업이익을 매일경제가 비교 분석한 기사도 같은 사실을 말해준다. 국내 증시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의 지난해 합산 영업이익은 35조 6956억 원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이들 기업의 실적을 모두 합해도 일본과 대만의 시가총액 1위 한 종목의 영업이익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도요타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약 44조 원, 대만 TSMC는 약 39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업이익률도 한국 대표 기업들이 미국은 물론 일본과 대만 기업들보다 낮은 편이다. 실적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인을 고려한다고 해도 재벌 3, 4세가 경영하는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을 둘러싼 논란은 친족이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과 관련성이 높지 않고 3, 4세로 내려가면 오히려 부정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정 회장은 재벌 3세다. 그가 주력 기업인 이마트 경영을 맡은 뒤 실적과 주가는 지지부진했다. 작년에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간 실적에서 적자를 기록했다. 쇼핑의 대세가 온라인으로 바뀌는 추세를 따라잡지 못한 탓이 크다.

 

 이마트 수익성 지표. 네이버 'N pay 증권' 화면 갈무리.
 이마트 수익성 지표. 네이버 'N pay 증권' 화면 갈무리.

이마트가 내리막길을 걷는 동안 정 회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스타로 떠올랐다. 영업실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거액을 투자해 야구단을 인수하기도 했다. 경영에 집중하지 않고 딴청을 피우는 사이에 이마트의 기업 가치는 추락했다. 이마트 주가는 2018년 이전에는 주당 20만~30만 원대를 오르내렸으나 지금은 6만~7만 대로 하락했다.

정 회장은 작년에도 수십억 원의 보수를 챙겼고 지난 8일 신세계그룹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회사가 어려워지자 희망퇴직을 받는 등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자신의 경영 실패를 직원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의 주범인 한국 재벌기업의 현주소다.

모든 재벌기업이 정 회장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재벌 3, 4세는 대체로 창업 세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경영 능력이 떨어진다. 이런 측면에서 경영권 승계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상속·증여세를 완화하자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부의 대물림’을 부추기며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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