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파국 막고자 ‘기후 유권자’ 나서야

핵 발전소, 기후 위기 대안이 되지 못해

무너진 ‘세대 정의'와 ‘생태 정의’ 살려야

식량, 에너지, 돌봄 자족하는 지역 만들기

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60+기후행동 운영위원
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60+기후행동 운영위원

올겨울 산불이 크게 줄었다. 역대급 엘니뇨 현상으로, 난데없는 ‘겨울장마’가 왔기 때문이라는데, 사과를 비롯한 과일과 비닐하우스 안의 파와 딸기 가격이 치솟는다. 일조량 부족 탓이란다. 기후학자는 가파른 온난화를 원인으로 파악하는데, 세계 평균기온은 벌써 산업화 대비 섭씨 1.5도 이상 상승했다. 수십만 논문을 근거로 연구하는 세계의 기후학자들은 다급하다. 산업화 시대를 기준으로 1.5도 이상 상승하면 미래세대는 파국을 피하기 어렵다고 결론을 냈음에도 세계의 어떤 유력한 정치권도 긴장하지 않는 탓이리라.

사태 악화시키는 정치권의 냉소

기후학자와 더불어 세계의 기후활동가들은 화석연료 소비를 과감히 줄이자는 호소를 멈추지 않건만, 정치권의 냉소로 실존적 실천 대안은 시민사회로 절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국가들은 핵심을 피하는 변죽에 그칠 뿐, 실효적 정책을 한사코 외면한다. 온난화가 이끈 세계 곳곳의 기상이변은 발생 빈도가 잦아질 뿐 아니라 파괴력은 점차 강력해진다. 안정 잃은 생태계에 휩쓴 감염병은 서막에 불과할 것이다. 회복탄력성을 잃은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는 위기의 징후는 코로나19보다 흉흉할 것이다. 위기는 돌이키기 어려울 것이며 지역적이거나 간헐적인 차원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무너진 ‘세대 정의’, ‘생태 정의’

위기는 기상이변과 감염병을 넘어선다.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갈등은 불평등에 찌든 인류사회에 필연에 가깝다. 화석연료를 과소비하며 정의를 버린 인류는 식민지 착취에서 멈추지 않았다. 미래세대가 누릴 자원을 수탈하면서 뭇 생명의 기반인 생태계의 안정성을 해치고 말았다.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오는 위기는 조상이 간직해 온 ‘세대정의’와 ‘생태정의’를 망각한 데에서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외면했고, 인류는 급기야 ‘인류세’(Anthropocene)를 맞이하고 말았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기를 거부한 자업자득이고 인류에 대한 자연의 인과응보다.

 

지난 23일 '지구 시간' 조명 끄기 행사 직전의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의 모습. 지구 시간은 기후 변화에 맞서 싸우는 인식을 높이기 위해, 이날 오후 8시 30분(세계 각국 현지시각)부터 60분 동안 조명을 꺼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전 지구적 요청을 부각시키는 행사다. 피켓의 글귀는 '기후 보호'(왼쪽)와 '민주주의 강화' 2024.3.23. EPA 연합뉴스
지난 23일 '지구 시간' 조명 끄기 행사 직전의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의 모습. 지구 시간은 기후 변화에 맞서 싸우는 인식을 높이기 위해, 이날 오후 8시 30분(세계 각국 현지시각)부터 60분 동안 조명을 꺼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전 지구적 요청을 부각시키는 행사다. 피켓의 글귀는 '기후 보호'(왼쪽)와 '민주주의 강화' 2024.3.23. EPA 연합뉴스

“돈 룩업”

눈을 부릅뜬 매가 별안간 내려온다. 위기를 감지한 꿩은 낙엽에 대가리를 박는다. 피할 수 있을까?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는데, 순간의 이익에 눈이 먼 기득권은 하늘을 바라보지 말라고 민중에 윽박지른다. “돈 룩업”(Don’t lookup)이다. 흑사병이 거푸 발생하던 중세 유럽에서 비단을 싣고 온 기득권은 안일했고 흑사병은 다시 창궐했다. 21세기의 기후위기는 더욱 가혹할 텐데 미래세대의 생존 기반을 수탈한 기득권과 그런 기득권 품 안에 안긴 정치권은 터무니없이 안일하다. 게다가 성립될 수 없는 가정을 전제로 내세우는 대안은 섣부르기 짝이 없다. 위기를 외면할 뿐 아니라 오히려 앞당긴다.

볼티모어 다리 충돌과 비교할 수 없는 기후위기

뚜렷해진 원인을 근원적으로 진단하지 않고 관 끝만 보려는 대안은 허상에 불과하다. 열역학 법칙을 무시하는 전기차와 수소, 그리고 핵 산업을 거론하지 않는가. 지난 26일 미국 최대 물동량을 자랑하던 볼티모어 항구의 대형 다리가 화물선과 충돌해 한순간에 무너졌다. 표류하는 화물선의 긴급신호로 차량 진입을 막은 경찰 덕분에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기후위기 징후는 볼티모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기상이변은 묵시록을 하염없이 전하는데, 우리는 허상에 가까운 대안에 몸을 기댈 뿐, 꿈쩍하지 않는다.

기득권이 강요한 체계적 편의에 길든 민중은 예나 지금이나 눈앞의 재난에 허둥거릴 뿐, 다가오는 징후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오늘도 어제와 비슷한 상황이므로, 기후학자가 제시하는 정교한 자료가 지겨운 걸까? 먼 미래를 생각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는 걸 짐작하면서도, 통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움직이게 하려면 어떤 언어가 유효할까? 호주 환경운동가는 기후변화를 감정적으로 이야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오죽하면 감정에 호소하고 싶었을까?

역대 황제 부럽지 않은 안락한 편의는 심각한 한계에 봉착했다. 에너지 과소비가 만든 축제는 환락이다. 멈춰야 한다. 현실에 기반이 없는 디지털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에너지 과소비를 전제로 확장될 따름인데 콘크리트, 철강, 석유화학 엔트로피로 세상을 망친 기득권은 우주산업으로 내일을 망치려 든다. 후손이 누릴 생태계의 90%를 고갈시킨 인류는 어느새 80억을 돌파했건만, “돈 룩업”이다.

 

'멸종 반란(XR)' 소속의 환경 운동가들이 지난 23일 프랑스 낭트 근처 동즈에서 열린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에너지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장인 거대한 정유소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배너에 적힌 글귀는 "당신의 범죄와 광대 짓을 끝내시오". 2024.3.23. 로이터 연합뉴스
'멸종 반란(XR)' 소속의 환경 운동가들이 지난 23일 프랑스 낭트 근처 동즈에서 열린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에너지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장인 거대한 정유소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배너에 적힌 글귀는 "당신의 범죄와 광대 짓을 끝내시오". 2024.3.23. 로이터 연합뉴스

대안이 될 수 없는 핵 발전소

경제성장 질곡에서 핵발전소 연쇄 폭발을 지켜본 일본정부는 탐욕을 거두지 않으며 핵오염수 방류를 확대하는데, 남극 스웨이츠 빙하는 붕괴가 눈앞이다. 바닷물의 온도 상승과 무관하지 않은데, 겨우 매달린 한반도 넓이의 빙하는 두께가 평균 2km에 달한다. 무너지면 지구촌 해수면은 즉각 0.5m 상승할 텐데, 어떤 기득권도 탐욕을 자제하지 않는다.

일각에서 화력발전소 폐쇄를 제안하지만, 실천은 느려터졌는데, 생존을 염두에 두는 대안은 에너지에서 그칠 수 없다. 물론 발전소, 그리고 터빈 에너지의 절반 이상이 실리는 온배수를 당장 줄여야 한다. 생산한 전기보다 많은 에너지로 수온 높이는 화력발전소보다 핵발전소가 위험하다. 처리할 수 없는 핵폐기물을 물려줄 뿐 아니라 같은 용량의 화력발전소보다 두 배가 넘는 온배수를 내놓지 않던가.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핵발전소 증설로 디지털 신기루를 약속한다.

국립공원마저 이용 대상으로

지구촌의 걷잡을 수 없는 기상이변은 수도권 확장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GTX와 비행장을 추가하려는 한반도를 예외로 여길 리 없다. 온난화 재난을 조금이라도 예방하려면 발전소 가동을 서둘러 멈춰야 옳지만, 당장 행동해야 할 특별한 순간이 왔다. 4월 10일, 4년 전보다 심각한 “기로의 순간”을 만나지 않는가. 위기를 완충하던 국립공원마저 이용 대상으로 여기는 정책이 세워지는 마당에 22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둔 우리는 ‘기후 유권자’가 되어야 한다.

 

각국 기후 장관들이 지난 21일, 올해 기후 정상 회담 COP29(제29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앞두고 덴마크 헬싱고르의 마리엔리스트 스트랜드 호텔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2024.3.21. 로이터 연합뉴스
각국 기후 장관들이 지난 21일, 올해 기후 정상 회담 COP29(제29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앞두고 덴마크 헬싱고르의 마리엔리스트 스트랜드 호텔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2024.3.21. 로이터 연합뉴스

‘기후 유권자’들이 나서야 할 때

분별없던 경제성장을 위해 헌신이라 여기며 젊음을 불태웠던 세월을 후회하는 60대 유권자로서, 귀가 열린 이웃에게 미래세대를 위한 행동을 감정적 언어로 호소한다. 소용이 닿길 바라는 마음이다. 숱한 경험을 미루어 본다. 정치권은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길 거듭 거부했다. 우리나라에 닥친 기상이변은 해외 사례와 달리 그럭저럭 견딜만했지만, 그런 운이 마냥 이어질 리 없다. 4년 이내에 어떤 재난을 마주할지 모른다. 돌이킬 여지가 남았을 때, 실존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2월 14일, ‘기후 유권자’가 나섰다. 미래세대는 물론, 노년이 모여 ‘기후정치 원년 시민 선언’을 선포한 것이다. 가뭄과 산불이 심각했어도 기후정책을 외면했던 호주 집권당은 2022년 유권자의 행동으로 정권을 잃었다. 5% 전후의 표 차이로 당락이 좌우되는 선거에서 기후유권자는 힘은 세다. 4년 뒤에 닥칠 기후 상황은 끔찍할 수 있기에 기후 유권자는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22대 국회가 반드시 행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권은 사뭇 긴장해야 한다.

시시각각으로 긴박해지는 상황에서 22대 국회에 입성하려는 정치인은 위기에 절박하게 대처해야 한다. 위기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각오로 포괄적이며 심층적인 기후정책을 입안하고 늦지 않게 실현해 나가야 한다. 정책은 기득권의 탐욕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래세대에 건강한 내일을 약속하는 만큼, 절제된 자세에서 출발해야 한다.

식량, 에너지, 돌봄 자족하는 지역 만들기

국가 차원의 모든 정책은 미래세대 생존을 최우선으로 정립해야 한다. 화석연료가 바닥을 드러낸 상황에서 외부에 의지할 여유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 땅 안에서 헤쳐갈 대안을 찾아야 한다. 무엇일까? 간디는 70만 개의 자족하는 마을이 소통하는 인도를 희망했다. 대한민국은 회복탄력성이 복원된 한반도의 생태계 안에서 자족하는 삶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할 텐데, ‘60+기후행동’은 ‘15분 자족도시’를 고민한다. 파리를 중심으로 펼치는 ‘15분 도시’보다 적극적인 전환 개념이다.

일찍이 협동조합 운동에 헌신했던 경제사상가 우치하시 가츠토(内橋克人)는 식량(Food), 에너지(Energy), 그리고 돌봄(Care)을 지역에서 자급하는 ‘FEC 자급권’을 설파했다. ‘15분 자족도시’는 대중교통과 자전거로 이동하는 범위에서 사회 서비스를 해결하는 차원을 넘어, 자급자족을 도모하는 마을이 핵심이다. 물론 쉬울 리 없다. 수백만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를 자급 마을로 개과천선하는 방법은 지역에 따라 다양할 텐데, 사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다급하다. 미래세대의 처지에서 살펴야 한다. 강조한다. 민주적이면서 심층적이며 포괄적으로 논의해야 실존 가능성이 보일 것이다.

식민지로 전락한 농어촌과 생태계를 되살릴 ‘15분 자족도시’를 상상해 보자. 15분 자족도시는 미래세대의 지속 가능한 생존을 뒷받침할 것이다. 22대 국회의 헌신으로 농어민의 자율적 생산 의지를 독려하는 ‘15분 자족도시’가 다채롭게 공존한다면 미래세대는 파국을 면할 것이다. 4년 뒤 후회하지 않을 22대 국회에서, 어쩌면 가장 시급한 실존적 과제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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