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현장 행동대원들 타지키스탄 국적

20년 만에 다시 터진 푸틴-이슬람 악연

긴장 높이는 우크라이나와의 연계 의혹

전쟁 여파로 과격파 단속 공백 생겨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러시아 대사관 앞에 모스크바 공연장 총격 테러로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다발과 촛불이 놓여 있다. 지난 22일 발생한 테러로 지금까지 137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2024.03.25. AFP 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러시아 대사관 앞에 모스크바 공연장 총격 테러로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다발과 촛불이 놓여 있다. 지난 22일 발생한 테러로 지금까지 137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2024.03.25. AFP 연합뉴스

지난 22일 모스크바 교외 크라스노고르스크 콘서트 홀에 마련된 기독교인들의 대규모 행사장을 공격해 137명(24일 현재)의 사망자 등 수백명의 사상자를 낸 테러사건 범인들 중 붙잡힌 4명의 주요 멤버들이 모두 타지키스탄 출신인 것으로 밝혀졌다.

핵심 테러범들은 타지키스탄 국적자

사건 현장에서 행사 참가자들을 겨냥해 총기를 난사한 이들은 타지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이슬람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 지부 조직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가니스탄 지부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슬람 과격파 네트워크인 IS의 10여 개 지부 가운데 하나다.

25일 러시아 매체 <이즈베스티야> 보도를 인용한 <아사히신문>과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들은 10대~30대의 남성들인 다렐존 바로토비치 미르조에프(32), 사이다크라미 무로달리 라차발리조다(30), 샴시딘 파리두니(25), 무하마드스빌 파이조프(19)로 신분이 확인됐으며, 모두 타지키스탄 국적자들이다.

이들은 22일 저녁 8시께 전투복을 입고 무장한 채 행사장에 난입해 콘서트 개막을 기다리던 관객들을 향해 가까운 거리에서 자동소총을 난사한 뒤 자동차로 도주했으나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인 러시아 남서부 브랸스크 주에서 붙잡혔다고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23일 밝혔다. FSB는 이들을 포함해 모두 11명을 사건 관여 혐의자로 붙잡아 구속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발생한 러시아 모스크바 크로커스 시티홀 테러 용의자 중 한 명인 다렐드존 미르조예프가 24일 모스크바 바스만니 지방법원의 유리로 된 피고인석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번 총격 테러로 지금까지 137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2024.03.25.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22일(현지시간) 발생한 러시아 모스크바 크로커스 시티홀 테러 용의자 중 한 명인 다렐드존 미르조예프가 24일 모스크바 바스만니 지방법원의 유리로 된 피고인석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번 총격 테러로 지금까지 137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2024.03.25. 로이터 연합뉴스

긴장 높이는 우크라이나와의 연계 의혹

FSB는 이들이 “우크라이나로 도주할 작정으로, 우크라이나 쪽과 접촉하고 있었다”고 주장했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이를 토대로 23일 근거를 밝히지 않은 채 테러범들과 우크라이나의 연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따라 러시아 정부가 이 사건을 우크라이나 및 서방 지원국들을 비판하면서 전쟁을 확대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 재료로 삼을지도 모른다는 억측들이 나돌면서 긴장이 높아지고 았다고 서방 매체들은 전했다.

이에 대해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문은 텔레그램에 “우크라이나는 이 사건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우리는 러시아군, 그리고 러시아 국가와 전면전을 치르고 있다. 모든 것은 전장에서 결정될 것”이라며 사건 관련설을 전면 부정했다.

존 커비 미국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 담당 조정관도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으로서는 우크라이나가 사건에 관여한 징후는 없다"고 못박았으나, 러시아 정부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는 듯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러시아군은 24일 새벽 미사일 29발, 드론 28기로 우크라이나 각지를 공격했다고 우크라이나 공군이 발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SNS를 통해 "푸틴 일파가 책임을 전가하려 하고 있다. 그들의 수법은 언제나 똑같다"고 비난했다.

미국 테러정보 사전 입수, 러시아에도 통보

사건 전에 미국이 IS 아프가니스탄 지부가 모스크바 인근 지역 콘서트 행사를 노린 범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그 지역 거주 자국민들에게 48시간 동안 콘서트 행사에 가지 말도록 권고하는 한편, 러시아 정부 쪽에도 관련 정보를 전달했으나, 푸틴 정부가 서방의 교란작업 가능성을 의심하며 대응하지 않았다는 보도들도 있었다.

20여년만의 대형 참사, IS "우리가 했다"

한편 사건 발생 다음날인 23일 IS계 매체인 아마크(Amaq)통신은 총과 칼을 든 범인들이 콘서트 홀 행사장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죽여”라는 외침 속에 총을 난사하는 장면과 함께 사람들이 쓰러지고 화재가 발생하는 참극 현장을 찍은 동영상과 함께 IS의 성명을 내보냈다. 성명은 “IS 전투원들이 모스크바 교외의 크라스노고르스크에서 기독교도들의 대규모 집회를 공격해, 수백명을 살상하고 기지로 무사히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IS의 성명에 대해, 이슬람국 조직들 중에 자신들과 관련이 없는 사건일지라도 이슬람계가 관여한 테러사건일 경우 그것을 자신들이 했다고 성명을 내는 사례들이 있는 만큼 더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들도 나왔다.

 

대선 승리로 5연속 집권에 성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모스크바의 선거 캠페인 본부에서 기자들을 만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15∼17일 진행된 대선에서 90%에 가까운 득표로 5선을 확정했다. 2024.03.18. AFP 연합뉴스
대선 승리로 5연속 집권에 성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모스크바의 선거 캠페인 본부에서 기자들을 만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15∼17일 진행된 대선에서 90%에 가까운 득표로 5선을 확정했다. 2024.03.18. AFP 연합뉴스

러시아와 이슬람 급진세력 및 IS의 악연

그러나, 러시아가 10여년 간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을 때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기 위해 러시아군이 반정부 조직과 이슬람국가 등에 공습을 가하는 등 지속적으로 공격한 사실 등을 떠올리며 IS가 푸틴이 통치하는 러시아를 공격할 이유와 명분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북오세티야와 체첸 등 무슬림들이 많이 거주하는 코커서스 지역들과 러시아 사이에도 분리독립 문제와 종교 등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으로 크고 작은 유혈 테러와 진압 참극이 되풀이돼 온 아픈 역사가 있다.

이번 테러 참사는 2002년의 제2차 체첸전쟁, 2004년 북오세티야 베슬란 학교 인질극 참사 등 2000년에 집권한 뒤 이슬람 급진세력에 강경대응으로 일관한 푸틴 체제에서 일어난 잇따른 대형 참사 뒤 20여년 만에 다시 터진 대형 참사다.

IS 아프가니스탄 지부는 2015년에 조직돼 아프간과 이란 등 인근지역에 대한 공격을 계속헤 왔다. 이란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아프간과 파키스탄에 걸친 지역은 ‘IS 호라산 주’로 불리는데, 여기에 자리잡은 IS 아프간 지부는, 그곳으로 도피해 IS에 충성을 맹세한 파키스탄의 반정부세력 ‘파키스탄 탈레반운동’(TTP)이 조직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IS 아프간 지부는 이 조직의 세력 확장을 경계하는 아프간의 이슬람주의 세력인 탈레반과는 적대관계에 있다.

우크라이나전쟁 여파로 과격파 단속 공백

IS 아프간 지부는 한때 아프간 동부 낭가르하르 주 중심부를 차지하며 전투원이 4천 명에 이를 정도로 힘을 키웠으나 2021년에 미군이 철수한 뒤 탈레반이 복귀하자 세력이 약화돼 지하로 숨어들어 테러공격을 가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호라산 주의 이들 IS세력은 2022년 아프간의 수도 카불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 자폭공격을 가한 뒤 성명을 발표했으며, 지난 2년간 러시아가 이슬람 교도를 탄압하고 있다며 푸틴 대통령을 비판해 왔다. 호라산 주에는 체첸인과 우즈베크인 등 러시아와 대립하는 중앙아시아의 무장세력과 전투원들이 다수 들어가 있으며,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한 IS 본체에도 이들 옛 소련 구성 공화국들 이슬람 교도들이 참여했다.(<아사히> 3월 24일)

러시아 내 이슬람 과격파 세력은 푸틴 정부의 강압적인 대응책으로 세력이 약화됐으나,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단속이 약해지면서 그들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동원된 소수민족들 중 중앙아시아 지역의 러시아 국적 보유 이슬람계 민족들도 다수가 전사하는 등의 피해를 본 것도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이슬람 율법이 지배하는 국가 수립을 꿈꾸는 IS로서는 기독교도들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계속 싸우게 만들어 힘을 소진하게 만드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억측들일 뿐 무엇 하나 분명히 밝혀진 게 없다.

어쨌든 이런 변화와 계산들이, 푸틴의 사실상의 영구집권을 위한 이번 대선 재선에 동의하지 않는 세력들의 불만을 배경으로, IS가 이번 테러공격을 감행하게 만든 기반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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