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처-대기업 유착과 석연치 않은 검찰 수사 종결

원자력발전소 입찰 담합과 발주처 유착 비리가 외부에 알려지게 된 것은 2018년 1월. 한 직원의 내부 고발이 계기가 됐다. 공익제보자는 2009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상대로 한 입찰 실무를 맡았던 김민규 전 효성 차장이다. 지난 몇 년간 언론 보도를 시작으로 국정감사, 검‧경, 공정거래위원회를 오가며 논란은 불거졌지만 해결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이 사건은 비단 담합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짬짜미로 인해 높아진 낙찰가는 혈세 낭비와 대기업의 폭리로 이어지고, 입찰과 납품 과정에서 발생한 비리는 발전소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원전위험공익정보센터(PRCDN)는 김 전 차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핵산업계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원전 납품 비리는 어떻게 발전소 안전을 위협하는가. (편집자 주)

 

신한울 1·2호기 전경. 출처한수원 홈페이지
신한울 1·2호기 전경. 출처한수원 홈페이지

“냅킨 위에 물량을 씁니다. 그걸 가위바위보 또는 사다리 타기로 해서 하나씩 가져가게…”

약 5년 전 김민규 전 효성 차장은 국가 공공기관과 대기업 간 입찰 담합의 실상을 폭로했다. 당시 알려진 입찰 비리 핵심 사건은 2011년 신한울(신울진) 1·2호기 초고압 변전설비 입찰 사례로 효성은 약 1400억 원 규모의 800kV 가스절연차단기(GIS) 납품 계약을, 현대중공업은 1500억 원대의 765kV 전력용 변압기 계약을 각각 따냈다. GIS와 초고압 변압기는 대표적인 유착 사례로 꼽히는데, 대기업 2곳이 시장을 양분하는 독과점 구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낙찰자에게 물량을 몰아주기 위해 다른 업체들은 들러리 역할을 맡고, 발주처는 담합 묵인 대가로 향응과 금품을 제공받는다. 2014년 10월 김 전 차장은 효성의 비리를 한수원에 제보했지만 도리어 회사에 알려져 정직 처분을 받았다가 2015년 11월 해고된다. 언론 보도 후 공정위 등은 김 전 차장의 제보를 토대로 조사에 착수했으며, 국정감사에서도 크게 논란이 된 바 있다.

2018년 초 언론을 통해 폭로된 핵심 사건은 2011년 신한울 1‧2호기 계약 건이었지만 효성과 현대중공업 간 짬짜미 관행은 비단 이뿐만은 아니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위원회 종합국감에서는 당시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4년 11월 김 전 차장과 현대중공업 영업 담당이 신고리 3‧4호기 변압기 입찰 담합에 대해 논의하는 내용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했고, 검찰 조사 과정에서는 신고리 5‧6호기 초고압 차단기 계약 건도 논란이 된 바 있다.

김 전 차장은 ”중앙지검 담당 검사는 신한울 1‧2호기 계약 건은 신고리 5‧6호기 초고압 차단기와 함께 계속되는 불법행위이므로 ’포괄일죄에 관한 법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언급했다“며 ”한수원이 신한울 1‧2호기의 경우 2011년 1월 입찰공고를 냈지만 신고리 5‧6호기는 2016년 11월로 입찰공고가 지연됐기 때문에 포괄일죄 법리를 적용하면 법죄 대상 액수가 3000억 원이 넘어가고 불법행위에 대한 기산일은 2016년 11월경이 돼 입찰비리 게이트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앙지검에 ’입찰담합 비리 의혹 사건‘에 대한 고발장이 접수된 것은 2019년 6월로, 신한울 1‧2호기의 경우 2011년을 기점으로 공소시효를 계산하면 공정거래 위반 행위에 대한 공소시효(5년)가 완성됐지만 신고리 5‧6호기 입찰공고 시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공소시효가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김 전 차장은 설명했다.

앞서 효성‧현대중공업을 비롯해 천인, 천인이엠, 현대기전은 2014년 12월 원전 전동기 구매입찰 담합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검찰 고발과 과징금 11억5300만 원을 부과받은 바 있다. 이들은 2005년 4월부터 2013년 4월까지 한수원이 발주한 입찰 계약 265건 가운데 128건에서 답함을 모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고압 변압기‧차단기 뿐만 아니라 국가 공공기관의 입찰 및 납품 계약 과정 전반에 걸쳐 비리가 만연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셈이다.

김 전 차장은 ”2017년 공정위에 5건을 제보했지만 공정위는 과징금 규모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변압기 관련 1건만 제재하고 나머지 4건은 증거불충분으로 결론냈다“며 ”행정처분과 형사처분을 받은 1건의 경우 오히려 유일하게 증거가 부족했던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히려 공정위가 사건을 축소하거나 무마하려는 의도를 내비쳤다며 ”당시 해당 사건 담당자는 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힘들게 하느냐며 질책하듯이 심문했다“며 ”증거를 제공할 때마다 믿지 못하겠다며 다른 증거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짬짜미로 인해 높아진 낙찰가는 혈세 낭비와 대기업의 폭리로 이어지고, 입찰과 납품 과정에서 발생한 비리는 발전소 안전과 직결된다. 사진 픽사베이
짬짜미로 인해 높아진 낙찰가는 혈세 낭비와 대기업의 폭리로 이어지고, 입찰과 납품 과정에서 발생한 비리는 발전소 안전과 직결된다. 사진 픽사베이

자격 미달 부품이 원전에…”변압기 문제는 발전소 안전과 직결“

김 전 차장의 폭로로 세간이 떠들썩하던 그때 원전 안전과 직결되는 황당한 사건이 또 터진다. 효성이 품질 인증을 제대로 받지 않은 채 변압기를 공급한 것. 한수원은 2012년에도 시험성적서와 품질 인증을 위조한 제품을 납품받아 관련자들이 처벌되고, 원전이 가동 중지되는 일을 겪은 바 있다.

효성은 2013년 3월 한울 1·2호기 원전용 몰드변압기 입찰에서 담합을 통해 낙찰받은 뒤, 2013년 5월과 11월, 2014년 11월, 2015년 6월 등 총 4차례에 걸쳐 42대의 변압기를 납품했다. 변압기 1대의 가격은 약 1600만 원이다. 김 전 차장은 ”몰드변압기는 원전 내부 핵심 제어 설비에 필수적인 전원을 공급하는 용도“라면서 ”변압기에 문제가 발생하면 발전소 전체가 통제 불능, 즉 셧다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것은 2014년 11월에 납품한 11대의 변압기다. 1차 납품을 완료한 후 2차 납품 일정을 논의하던 중 효성은 변압기에 대한 Q등급 인증서를 갱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1차 납품한 변압기 10대도 같은 하자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변압기를 비롯해 원전 핵심 품목은 전력산업기술기준(KEPIC) 원자력 품질보증 자격 인증이 필요하다. Q등급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업체는 한수원 입찰과 납품을 할 수 없다. 자격 인증은 3~4년 주기로 갱신이 필요한데 효성 측은 1차 납품 이후 2차 납품을 앞두고 갱신 기간을 초과해 인증이 사실상 취소된 사실을 뒤늦게 발견된 것이다.

김 전 차장은 ”2013년 5월 1차 납품이 이뤄진 후 9월 2차 납품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해 여름 한수원 품질관리팀의 연락을 받고 확인해 보니 갱신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된 것“이라며 ”정작 변압기를 생산하는 2공장에 대해서는 인증을 갱신하지 않고 전혀 다른 제품인 차단기 등을 생산하는 4공장 시험성적서로 해당 사안을 취재 중인 기자에게 거짓 해명하다가 들통난 셈“이라고 말했다.

효성은 기준 미달의 제품을 원전에 납품했고, 발주처인 한수원은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셈이다. 당시 한수원 측은 ”효성이 Q등급 인증 없이 납품한 것을 몰랐다“며 관리 방안을 개선하겠다고 나섰지만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랫동안 공고히 다져진 대기업 간 담합과 발주처-납품업체와의 유착관계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셈이다. 김 전 차장은 ”발전소 안전과 직결되는 핵심 설비의 입찰 및 납품 조건에 중대한 하자가 발견된 것“이라며 ”품질관리 메뉴얼에 따라 발주처가 즉시 이를 전수 조사해 건전성 평가를 실시하는 것이 상식적인 후속 대책이지만 한수원은 오히려 사건을 축소하려고만 했다“고 말했다.

 

새울 1‧2호기(구 신고리 3‧4호기) 전경. 출처 한수원 홈페이지
새울 1‧2호기(구 신고리 3‧4호기) 전경. 출처 한수원 홈페이지

’뿌리 깊은 짬짜미‘는 대기업 폭리로…검찰‧공정위는 뭐했나

"응, 그러면 무지 남는다."

"에이, 무지는 아니에요. 한 40% 정도.“

이는 당시 언론 보도된 김 전 차장과 현대중공업 입찰 담당자의 대화 녹취록 중 일부다. 담합으로 얻은 이익이 판매가의 약 40%에 달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효성의 평균 이익률이 10%대라는 점에서 막대한 폭리를 취하는 셈이다. 담합으로 인해 높아진 낙찰가는 국고 손실로 이어지고, 결국 국민 부담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한겨레>가 확보한 2013년 11월 효성의 ‘직원 포상요청서’에는 한수원이 발주한 고리·울진·월성 등 3개 원전의 변압기 입찰에서 17억 6천만 원을 수주했는데 평균 이익률이 30%에 달한다고 적혀 있다. 이 중 가장 높은 이익률을 기록한 고리의 경우 50%로 나타났다.

 

김 전 차장이 제공한 효성 중공업 부문 ERP 전산자료 중 일부.
김 전 차장이 제공한 효성 중공업 부문 ERP 전산자료 중 일부.

원전위험공익정보센터(PRCDN)가 김 전 차장이 제공한 효성 내부 자료 중 신한울 1‧2호기 차단기 견적원가를 살펴봤더니 약 756억원으로 나타났다. 김 전 차장은 ”효성그룹의 1년 전체 매출액이 약 10조 원인데 이 중 중공업 부문은 약 20%를 차지하고 신한울 1‧2호기 차단기 프로젝트의 경우 중공업 부문 전체 매출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입찰“이라며 ”계약금액은 1400억원인데 제조원가는 700억원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효성은 50% 가까운 막대한 이익을 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입찰 참여 기업들은 견적가를 고의로 높게 제출해 발주처의 입찰예정가 산정에 영향을 미치도록 한다“며 ”효성 등은 막대한 이익을 내기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공모했을 뿐만 아니라 납품 후에는 이를 숨기기 위해 원가를 부풀린 후 법인세를 탈루했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대외적으로는 평균 이익률 10%대를 유지하기 위해 법인세 부과 대상 금액을 낮추거나 협력업체에 돌려받는 방식 등을 동원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2020년 6월 담당 검사의 전보로 후임 검사는 1개월 만인 7월께 해당 사건을 공소시효 만료로 인한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 처분한다. 이에 불복한 김 전 차장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결정에 따라 항고와 재항고를 했지만 모두 기각됐다”며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아닌 형법상 사기 혐의로 고발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기도의 2차 고발로 2021년 3월 서부지검은 2021년 4월부터 9월까지 5개월 동안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오너일가인 조현준 회장을 비롯해 김동우 효성중공업 대표이사, 신한울 1‧2호기 초고압 차단기 입찰 담합에 연루된 임직원 8명을 소환해 조사했다. 그는 “사건은 석연찮은 이유로 중대범죄수사부나 일반 형사부도 아닌 식품의약품범죄조사부에 배당된 이후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됐다”며 “당시 오너일가 비자금 조성 의혹이나 법인세 탈루에 대해서는 수사조차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