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윤미향, 이재명 마녀사냥 떠올려지는 영화

여론 재판, 증거 조작으로 억울한 누명 쓴 주인공

물증도 없이 거짓 증언으로 사형 집행에 내몰려

검찰·사법 권력의 가장 큰 피해자는 보통 사람들

이번 총선에서도 검찰·사법 개혁은 핵심적 과제

전지윤 사회운동가·'연속성과 교차성' 저자 
전지윤 사회운동가·'연속성과 교차성' 저자 

미국에서는 이미 2019년에 개봉했지만 얼마 전 넷플릭스에 올라오며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게 된 영화 <저스트 머시>가 여기저기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특히 검찰 개혁과 사법 개혁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는 평가와 추천의 목소리가 높다.

권력을 이용해 무고한 사람을 표적으로 정해서 억울한 희생양으로 만들어내는 권력기관들에 분노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볼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배경은 1986년의 미국 앨라배마이고 주인공은 억울하게 백인 소녀 살해범이 된 흑인 사형수 월터 맥밀런이다. 

 

영화 '저스트 머시'
영화 '저스트 머시'

영화는 여론 재판, 사건과 증거 조작을 통해서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생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검찰과 경찰, 사법부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전기의자에 앉아서 사형당할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면서 억울함과 부당함에 대한 분노를 몇 배로 끌어 올린다.

아무런 물증도 없고, 오히려 반대되는 증거만 있지만 경찰과 검찰은 그런 증거들은 덮어버리고 자신들이 만들어낸 증언만으로 범인을 만들어낸다. 그 증인은 검찰과 경찰에게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압박을 받아서 거짓 진술을 한 것이었다.

나중에 용기를 낸 증인이 이를 번복하지만, 법원은 그것마저 받아들이지 않고 사형 집행을 유지하는 판결을 내린다. 이처럼 권력기관과 언론, 여론이 다 주인공을 죄인으로 몰아가니 나중에는 본인도 자신의 무고함과 진실을 믿지 못할 지경이 돼 버린다.

다만 끝까지 그를 믿고 지지해준 가족들과 주변의 가난한 이웃들이 있었고, 인권 변호사 브라이언 스티븐슨이 그들을 도와 힘겹게 진실을 밝혀나간다. 주인공은 이들 덕분에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니라는 믿음을 회복해 간다.

제이미 폭스가 억울한 사형수 역, 마이클 B. 조던이 변호사 역을 맡아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캡틴 마블>에서 슈퍼히어로로 나온 브리 라슨도 변호사를 돕는 시민운동가로 나온다. 이 모든 게 실화였다는 것뿐 아니라 마지막에 자막으로 나오는 실제 인물들의 이후 사연, 비슷한 일을 겪은 사형수들이 죽거나 수십 년 만에 석방된 사연들을 보다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전기의자에서 죽어가는 흑인 사형수의 모습
영화에서 전기의자에서 죽어가는 흑인 사형수의 모습

미국에서 이것이 단지 몇십 년 전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몇 년 전 미국을 흔든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과 여전히 미국에서 흑인의 감옥 수감률이 백인보다 6배나 높다는 사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나아가 이 영화를 보면 오늘날 한국 사회의 비슷한 사건과 재판들이 떠오르게 된다.

예컨대 월터 맥밀런은 이웃 마을의 백인 여성과 불륜 관계였다는 사실 등이 드러나면서 도덕적 비난을 당하며 여론 재판에서 파렴치한으로 몰린다. 실제 범죄 혐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생활과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적 결함들을 가지고 마녀사냥에 이용하는 것은 우리가 조국몰이나 이재명 마녀사냥에서 목격한 것이다.

경찰과 검찰은 월터에게 불리한 증언을 해주는 사람은 그가 절도 혐의가 있어도 풀어주고, 월터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려는 사람은 꼬투리를 잡아서 체포하려고 시도하면서 재판에 이용한다. 이것도 지난 몇 년간 조국 재판과 이재명 재판에서 검찰이 보여 준 방법이다. 유동규처럼 검찰을 도와준 이들은 구속이나 기소를 면하거나 혐의를 줄일 수 있었다.

주변에서 비난받으며 고립당하기에 월터의 편에 서는 사람들은 입을 열기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월터의 변호사는 교통 단속 등 여러 가지 압박과 불이익을 당하고, 월터의 무죄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증거와 증언이 나와도 판사는 기존의 잘못된 판결을 유지한다. 이것도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봐 왔던 모습이다.

조국, 윤미향, 이재명을 방어하는 사람들은 입을 열기 어려운 분위기였고, 이재명을 변호하던 법률사무소가 압수수색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조국·정경심 부부에게 유리한 새로운 증거들이 쏟아져도 재판부는 기존의 판결을 절대로 변경하지 않는다. 

 

억울한 누명을 벗고서 오열하는 주인공
억울한 누명을 벗고서 오열하는 주인공

그런데 영화 <저스트 머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월터가 유죄로 사형을 선고받는데 가장 결정적 구실을 했던 랠프 마이어스가 증언을 번복하는 장면이다. 중범죄자로서 감옥에 갇혀 있던 랠프는 사실 맥밀런이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경찰의 거짓 진술 강요에 저항한다.

그러자 경찰은 그를 사형수 수감소로 이감하고, 거기서 사형 집행되는 사람의 비명 소리와 전기의자에서 죽으면서 살타는 냄새를 맡다가 결국 굴복하고 만다. 왜냐하면 그는 어렸을 때 끔찍한 화상을 입어서 큰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랠프는 자신 때문에 무고한 월터가 고통받고 있다는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한다.

랠프가 마침내 용기를 내서 진실을 말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가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을지, 그럼에도 얼마나 용기를 냈을지 모두 느껴지는 명장면이다. 범죄자로서 사회에서 외면과 멸시를 받지만 양심은 사라지지 않은 랠프 마이어스로 출연한 팀 블레이크 넬슨의 명연기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나아가 이 장면을 보면 이 나라에서 검찰이 조작한 한명숙 뇌물수수 사건의 증인 한만호 씨가 떠오르게 된다. 검찰의 협박으로 거짓 증언을 했던 그도 나중에 용기를 내서 증언을 번복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의 보복으로 그는 또 감옥에 가고, 나중에 감옥에서 나와 괴로워하며 이런 비망록을 남기고 외로이 죽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저래서 자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 총리님도 이러다 그렇게 되시는 것 아닐까. … 거짓 진술, 사실이 아닌, 날조였기에 … 죄책감으로 가슴 속에 선혈이 터져 나올 듯한 고통을 느꼈다.” “세상의 후미진 곳에서 나를 아직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의 눈물에 온종일 날이 궂고 바람은 헝클어진 산발로 울고, 그래서 내 마음이 춥다.” 

 

검찰의 한명숙 사건 조작을 고발한 한만호 비망록  - 출처: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검찰의 한명숙 사건 조작을 고발한 한만호 비망록 - 출처: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그나마 조국, 윤미향, 이재명, 한명숙 사건 등은 우리 사회에서 많이 알려진 유명한 사건과 사람들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가난한 흑인들이 얼마나 사법 질서에서 권력기관에 의한 억울한 피해자가 되고 있는지 <저스트 머시>가 보여 준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도 검찰 권력과 뒤틀린 사법 질서의 가장 큰 피해자들은 돈 없고 힘없는 보통 사람들이다.

이것이 검찰 개혁이나 사법 개혁은 급하지 않고 나중에 하자고 하는 많은 사람이 놓치고 있는 점이다. 최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보여 준 ‘2009년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진실도 이것을 보여줬다. 이 사건에서 아버지와 딸은 서로 근친상간하다가 그것을 눈치챈 어머니의 입을 막기 위해서 공모해 독살했다는 혐의로 각각 종신형과 20년형을 선고받고 무려 12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

2009년 당시에 이 사건은 언론에 선정적으로 보도되면서 검찰의 중요한 업적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담당 검사들의 거짓과 조작이었다는 게 최근 밝혀지고 있다. 검찰은 가난한 농민에 글도 읽고 쓰지 못하는 아버지와 경계성 지능인 딸에게 억지로 자백을 받아내고 문서와 증거를 조작해서 누명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검사는 약점을 잡아서 억지로 거짓 진술을 강요하고 부녀에게 유리한 증거는 덮어버렸다. 당시 차장검사로서 수사 책임자 중의 하나가 현재 민주당 소속의 김회재 의원이라는 사실은 검찰 개혁이 얼마나 어렵고 뿌리 깊은 과제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지금 윤석열 '신검부' 정권은 사형제 부활까지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다가오는 총선에서도 검찰 개혁과 사법 개혁은 중요한 쟁점이 돼야 마땅하다. 

 

억울하고 가난한 흑인들을 위해 투쟁한 변호사 브라이언 스티븐슨의 실제 모습
억울하고 가난한 흑인들을 위해 투쟁한 변호사 브라이언 스티븐슨의 실제 모습

어떤 정당이나 후보가 그것을 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는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한다. 실제로 정치검찰의 표적이 된 사람들을 위해 싸웠던 변호사, 검찰·사법 개혁을 위해 노력했던 법무부 인사, 검찰 내부에서 진실을 고발하던 검사 등이 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 등에서 총선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이들이 이번 총선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국회로 진출해서 꼭 검찰 개혁과 사법 개혁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를 기대한다. <저스트 머시>에서도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정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월터를 위해 애쓰는 인권 변호사 브라이언 스티븐슨의 노력과 투쟁이었다. 영화 끝부분에 등장하는 ‘1993년 4월 1일 사형 제도에 대한 미 상원 청문회’에서 브라이언은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월터)은 저에게 희망을 잃지 않는 법을 가르쳐줬습니다. 이제 희망을 잃는 건 정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희망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게 해줍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진실을 왜곡할 때도 말입니다. 우리에게 앉으라고 할 때 일어나게 해줍니다. 조용히 하라고 할 때 말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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