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수사 '몸통' 향하자 차단…해외 도피 의혹

박성재 법무장관 "공적 업무하러 출국" 적극 엄호

윤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정치적 중립‧공정 의문

박 장관 취임 후 '반윤' 검사들 줄줄이 보복성 징계

법무부가 주요 피의자 이의신청 수용? 극히 이례적

"이종섭, 용산 전화 받고 이첩 보류…구속수사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 2023.9.12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 2023.9.12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채 상병 사망 수사 외압'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느닷없이 호주 대사로 임명한 데 이어, 법무부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출국금지를 신속하게 풀어줬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가 '몸통'으로 향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이 전 장관을 사실상 해외로 도피시키려는 의도를 더 할 나위 없이 적나라하게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만큼 수사 외압의 실체가 점차 드러나는 데 대한 윤 대통령의 불안감과 위기감이 심대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법무부는 8일 오후 "출국금지심의위원회를 거친 결과 (이 전 장관의) 이의신청이 이유 있다고 판단돼 출국금지를 해제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이 주호주 대사 임명 이튿날인 지난 5일 법무부에 출국금지를 풀어달라고 이의신청을 한 지 불과 사흘 만에 속전속결로 이뤄진 조치다. 법무부는 해제 사유로 ▲별다른 조사 없이 출국금지가 여러 차례 연장돼 온 점 ▲최근 공수처 출석 조사가 이뤄진 점 ▲본인이 수사 절차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장관은 전날 공수처에 출석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및 공용서류 무효 등 혐의로 4시간가량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출국금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지 하루 만에 이 전 장관이 황급히 공수처에 나가 조사를 받은 것은 출국금지 해제를 위한 명분 쌓기용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공수처가 수사 외압 사건의 지휘계통에 있던 신범철 당시 국방차관,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에 대한 직접 조사를 아직 못 했고 포렌식 작업 등 압수물 분석도 마치지 못한 상황이라 이 전 장관을 제대로 조사할 관계자들 진술과 증거가 미비했기 때문이다. 압수물 분석을 끝낸 뒤 하급자의 진술을 통해 사실관계를 다지고 마지막 단계에서 책임자를 소환해 그간 축적된 성과를 토대로 추궁하는 게 일반적인 수사 프로세스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대응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 회의에 참석해 개회를 기다리다 생각에 잠겨 있다. 2024.3.8. 연합뉴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대응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 회의에 참석해 개회를 기다리다 생각에 잠겨 있다. 2024.3.8. 연합뉴스

그럼에도 법무부는 이 전 장관이 공수처에 출석해 요식적인 조사를 받은 바로 다음 날에 서둘러 출국금지를 풀어준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전 장관은 이제 언제든 해외로 출국할 수 있게 됐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이날 출근길에 취재진에게 "(이 전 장관은) 개인적인 용무나 도주가 아니라 공적 업무를 수행하러 간다"고 강조해 대통령실 입장을 적극 거들었다.

경북 청도 출신인 박 장관은 윤 대통령이 초임 검사 시절 대구지검에서 같이 근무했고, 특히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외압' 폭로 이후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됐을 때 대구고검장으로서 윤 대통령을 각별히 챙기는 등 친분이 두터운 관계다. 그래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이어 법무부 수장으로 지명됐을 때부터 정치적 중립성 및 공정성과 관련해 여러 우려가 제기됐었다. 박 장관은 윤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6기수 선배지만 나이로는 윤 대통령보다 세 살 어리다.

박 장관 취임 이후 법무부는 문재인 정부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과 대립했던 신성식·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과 박은정 광주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를 줄줄이 해임하는 한편, 한동훈 위원장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정진웅 대전고검 검사(사법연수원 연구위원)에게 정직 2개월의 중징계를 내리는 등 노골적으로 '보복 징계'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법무부가 수사기관도 아닌 수사 대상자의 요청에 따라 출국금지를 해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것도 국민적 관심이 쏠린 주요 사건 피의자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해외로 나갈 수 있도록 해준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이 같은 법무부의 전격적인 출국금지 해제에 따라 채 상병 사망 사건의 책임 소재를 수사하는 과정에 부당한 외압을 행사하고 경찰에 적법하게 제출된 수사 기록을 회수하게 한 혐의 등을 받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는 큰 차질을 빚게 됐다.

물론 공수처가 출국금지 해제를 요청하지는 않았다. 공수처는 법무부가 해제 여부를 심의하기 전 해제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장관이 조만간 호주 대사로 나가게 되면 공수처는 현실적으로 이 전 장관을 다시 소환하기는 어렵고 대면조사에 비해 실효성이 크게 떨어지는 서면조사 정도만 시도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이나 외교부는 이 전 장관이 호주 현지에 언제 부임할지 아직 함구하고 있다.

 

채 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등의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1일 서울 용산구 군사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앞서 군 검찰의 구인영장을 받고 있다. 2023.9.1. 연합뉴스
채 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등의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1일 서울 용산구 군사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앞서 군 검찰의 구인영장을 받고 있다. 2023.9.1. 연합뉴스

김형남 군인권센터 소장 직무대행은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전 장관을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직무대행은 "공수처가 확보한 이종섭 전 장관 통화 내역에 따르면 이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31일 오전 11시 45분쯤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발신자는 대통령실 명의로 가입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소재의 유선 전화였다"며 "이종섭 전 장관은 11시 57분부터 자신을 수행하는 박진희 국방부장관 군사보좌관을 통해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에게 반복해서 전화를 건다. 11시 57분, 11시 59분, 12시 5분, 13시 32분,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출국 직전인 15시 49분까지 총 5번"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뿐만이 아니다. 13시 30분에는 서울로 출장을 나와 있던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소환해 긴급대책회의도 주재했다. 이 전 장관의 7월 31일 정오 이후의 모든 행적은 다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결과 이첩 보류에 집중되어 있었다"면서 "이유는 명백하다. 대통령실에서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대통령 격노와 수사 외압은 이제 의혹이 아니라 팩트"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이종섭 전 장관은 아직 국내에서 할 일이 많다. 우선 박정훈 대령 상관 명예훼손 사건의 주요 증인 자격으로 법정에 출석해 진술해야 한다. 피의자 신분으로 공수처 수사에도 응해야 하고, 국정조사가 열리면 증인으로 나서야 하며, 향후 특검에서도 수사를 받아야 한다. 출국하면 곧 다시 잡아와야 할 판"이라며 "공수처에 강력히 촉구한다. 대통령실과의 전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도 없이 거짓말을 일삼아 온 이종섭과 국방부 주요 피의자들에 대한 수사를 즉시 구속수사로 전환하라. 또한 줄곧 부인하던 통화 사실이 드러난 만큼 대통령실도 신속하게 압수수색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한민수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법무부가 기어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제3세계 독재국가에서나 벌어질만한 일"이라며 "법과 정의를 외친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과 법무행정을 담당하는 법무부가 대한민국의 사법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출국시키면 안 되는 이유가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사 외압 핵심 피의자를 해외로 도피시키려 하고 있다"면서 "자진 사임으로 윗선으로 의혹이 번지는 것을 차단해주었으니 총선이 지나고 수사가 잠잠해질 때까지 해외에 나가 편안하게 지내라는 대통령의 배려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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